무등산 기슭

최용완 (11-11-06)

막내딸 대학 졸업하길 기다려

아버지는 딸과 함께 비행 13시간

모국방문 길에 고향 광주를 찾았다.

무등산에 들러 어릴 때 소풍 다니던 이야기

좋아하는 여학생과 노는 동안에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우리를 찾고 있었다는

아버지와 딸의 웃음

산을 스치는 바람은 맑고 신선했다.

초등학교를 찾아 미국에서 건축가 된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동안

딸에게는 아름다운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머릿속 한곳에 잠겨있는 기억은

학교에 국군부대가 주둔하고

무등산에는 공산군 빨치산이 숨어 살고 있었다.

총성이 요란하고 수류탄 폭음과

화염에 잠을 깬 어느 날 새벽,

살인싸움, 절규, 비명, 피에 젖은 아침 길

쓰러진 군인들의 시체를 치우고

포로 열 사람은 끈에 묶여 무등산 기슭에 이르렀다.

헌병들은 포로들에게 삽을 주어 땅 구덩이를 파게 하고

한 사람씩 사살하여 자기가 판 구덩이에 쓰러지면

흙을 덮고 떠났다. 잠시 후에

가족들이 찾아와 소리 내어 울며 시체를 흙 속에서

찾아내어 등에 메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바다 건너 찾아온 평화스러운 마을, 아름다운 산,

뛰며 놀던 운동장, 그리웠던 아버지의 고향을

딸에게 남겨줄 마음에, 숨어있는 아픈 상처를 보이지 않았고

전쟁 동안 죄없이 희생된 많은 고인의 영혼에

묵도하는 침묵의 한순간을 딸도 모르게 나 홀로 가졌다.

장대한 무등산은 옛이나 오늘에나 한결같이 다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