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 50년 (3)

학생운동 기념탑의 노래

광주 서중학교는 일제 강점기에 학생 독립을 거친 전통이 있다. 광주 제일 고등학교와 같은 교정이다. 1919년에 삼일운동이 있었고 10년 후에 1929년에 서중일고 선배들이 항일독립운동을 일으켰음은 내가 다닌 학교 교정에 참으로 뜻 깊은 역사가 있다. 우리가 졸업하는 1957년에 기념탑이 세워져서 내가 졸업하면서 기념탑을 위한 시(노래)를 써서 졸업 행사지에 출판했음은 내 인생에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기 좋아했다.

뿌리 깊은 기념탑/ 꿋꿋이 솟아 있네/ 화랑의 혼 움직이어/ 피 끓은 가슴에
/ 목숨도 청춘도 모두 바쳤네/ 바람 앞에 깜박이는/ 내 나라 구하려.
백의민족 흐르는 단군의 피는/ 왜네 들 총칼로도 범치 못했네/ 방방곡곡 삼천리
/ 독립만세 울붖어/ 무궁화 대한민국 온 세상에 전했네.
오늘은 학생의 날 십일월 삼일/ 희망에 복받치는 젊은 힘 모아/ 선배의 뒤를 이어 줄기차게 나가자/ 바른길 우리의 길에 횃불은 타오른다.

내가 서중 일고를 다니는 동안에 우리 가족이 전쟁의 가난을 극복하는 어려운 기간을 지냈다. 아버지는 가끔 “우리나라가 응급실에 누워있는 형편이고 미국이 꽂은 영양주사의 힘으로 간신히 살아 있다.”고 표현하셨다. 어머니는 여학교 층층대 밑에 가게를 차리시고 나는 아침저녁으로 짐을 옮겼다. 그러한 어려움에서도

형은 문리대 수석입학

부모님은 나에게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격려하셨다. 매일 신문을 읽는 습관으로 세상을 보도록 해주셨다. 학교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반장을 하고 중고등학교 때부터는 학생대표로 교무회의에 참석하여 선생님들의 도우미도 했다. 학생 대의원, 군사훈련 중대장, 학교유도 대표선수, 합창대원, 연극반장, 등의 활동이 기억난다. 졸업식 때에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응시하러 이미 서울에 와 있었고 부모님만 졸업장 받으려고 참석하셨다가 8번 호명을 듣고 8가지 상을 받으신 후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보는 졸업식장에서 두 분이 많이 눈물 흘리셨다는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형은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수석 합격하여 지방고등학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기록을 세웠다.형은 문리대 의예과를 마치고 의과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공과대학 건축과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