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세아의 뿌리는 한반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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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세아의 과학과 발명
찰스힉함(Charles Higham)은 이들이 쌀농사를 지었으며 이곳에서 양자강 하구에 이르는 생활지역을 설명하였고 윌햄솔하임(Wilhelm Solheim)은 이들 농업문화는 해빙기(12,000‐7,000년전)이전부터 생활에 적용되었다고 주장했다. 피터벨욷(Peter Bellwood)는 그의 저서(The Prehistory of the Indo‐Malaysian Archipelago,1985)에서 이들은 나무껍질을 두들겨 섬유를 만들어 옷을 짜서 입었고 종이를 만들었으며 대나무 가지를 입으로 불어 대나무 안에 독살이 짐승에 맞아 사냥을 하는 무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유럽 역사학자들이 발표한 바비로니아 문화가 중국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들은 중국의 역사에 관한 지식이 없는 상황이었다. 2014년에 켐브리지 대학에서 출판된 EARLY CHINA 37의 내용에 그들은 중국 역사학자 사마천의 사기 기록을 인용하였지만, 중국, 바비로니아, 그리스의 문화는 거의 같은 때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이제 중국역사가 활발하게 연구되면 바비로니아와 그리스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기원전 4천~3천년 경에 동아세아에서 숯불과 석탄불로 구리와 청동이 생산되면서 금속문화가 시작되고 인류역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나무나 돌로 만든 도구들과 흙을 구어 만들었던 그릇들이 금속재품으로 바꾸어지면서 생활의 모든 면에 변화를 갖어 왔다. 곧 이어서 무쇠가 생산되어 청동과 무쇠는 남아세아 인도에 석굴조각이 시작되고 금속문화와 조각예술은 메소포타미아로 그리고 지중해로 전해진 듯하다.
동아세아에 강철생산은 기원전 4백년에 시작하였고 유럽에 전해짐은 14세기경에 몽골침략 이후에 알려진 듯 하다. 동아세아 군사무기중에 활은 나무와 짐승의 뼈를 합판하여 만들어졌고 금속 방아쇠를 각목에 설치하고 활을 얹어서 고정한 활총 (cross bow)은 동아세아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후에 삼족오 새가 해를 상징하는 의미와 함께 한나라에서 로마로 알려진 듯하다. 동아세아 유목민들은 일찍부터 말 안장에 가죽 발거리를 사용하다가 금속재품을 사용하였으나 세계의 다른 곳에는 최근에 들어 알려졌고 말이 이끄는 마차(chariot)는 소가이끄는 나무바퀴 수래에서 청동바퀴축이 고속도의 회전을 감당하면서 마차에 구비되는 여러가지 철재도구들과 함께 동아세아에 군사장비에 사용되었다가 페르시아에 알려지고 지중해에 전해진 듯하다.
한나라 때 AD 130년에 만들어진 지진측정기는 해시계 물시계 천체관측기 그리고 여러 금속악기들과 함께 북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지진 측정기는 4마리의 용과 4마리의 게구리가 용기밖에 4방향에 장식되어 지진이 감지되면 용의 입에서 구슬이 떨어지며 용기 안에 추는 지진이 오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동아세아인들이 금속을 생산하는 중에 발화물질과 폭팔 물질을 발견하고 일찍부터 화약(black powder)을 만들어 대나무에 넣고 폭탄을 발명하였다. 가벼운 대롱에 넣어 화살에 묶어서 로캣트를 만들어 먼 거리를 날고 폭발하면서 방화하는 위력있는 무기를 사용하였다. 고려 때 만주에 군사들은 1288년경에 처음으로 청동대포를 만들어 대포알을 쏘았으며 대포알 속에 화약을 넣어 도착지에서 폭발하는 무기를 만들었다. 화살을 연발하는 무기를 만들고 명나라 때에는 화약을 실은 화살 100개를 한 번에 쏘는 무기도 있었다.
산봉우리나 성루에서 검은 연기, 흰 연기 그리고 다른 색들의 연기를 올려 신호를 하였으며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손자병법은 현대강국들의 군사활동에 교과서가 되었다. 동아세아의 새로운 발명과 무기들은 훈족이나 몽골들이 세계침략에 나섰을 때에 짧은 기간에 거침없이 세계를 정복하는 능력이었다. 대부분의 동아세아의 발명과 기술은 16세기 이후에 나침판과 해양기술, 인쇄기술, 의약기술, 방직기술들과 함께 유럽에 전해졌고 세계현대역사가 비로소 시작하였다.
산둥성에 1000년 전에 세워진 87피트 높이의 칠층 철탑은 동아세아 재철문화의 상징이며 46톤의 무개를 가인 청동 종은 그 표면에 227,000개의 한자로 불경을 새겼다. 동아세아의 금속문화는 상나라(1554-1045 BC)때 대량생산된 청동제기들로 세계에 잘 알려져 있고 같은 때에 한반도 고조선과 상나라 사이에 촉( )나라가 있었다. 상나라와 촉나라가 주나라(1122-221 BC)의 침공을 당할 무렵에 촉나라민족은 중국내륙에 소금과 지하자원이 풍부한 사천성에 성도지역으로 이주한 듯하다.
소금은 생활에 필수품으로 인간의 소화기에서 곡식을 소화시키는 조미료이다. 무겁고 귀하여서 금과같이 여겼었다. 중원과 군륜산맥 사이에 위치한 사천성에 지하에서 나는 기름과 개스, 석탄과 소금 등을 채취하고 여러 가지 재품을 만들기 시작하였음이 오늘 날의 페트로니엄 산업의 시작이였다. 2200년 이전에 시작한 소금광은 지금도 운영되고있다. 거대한 대나무 건축물은 수천 피트의 지하 깊이에서 오일, 개스, 광물들을 채취하여 생산물들을 재조하였다. 대나무를 연결하여 개스와 오일을 공급하였다.
종교문화와 산업문명은 사회질서를 따라 도교와 유학을 바탕으로 천문학과 철학이 발달하였다. 음과양의 이원론과 오행사상은 후세에 과학과 철학 그리고 모든 예술에 적용되었다. 1986년에 발굴된 삼성퇴문화는 금박이재품들과 청동조각물들, 거대한 청동금가면, 생명나무, 새를 존중하는 양식, 얼굴에 눈을 강조하는 표현, 날개달린 용, 수많은 옥돌재품들의 출토로 중앙아세아 성도시일대에 문화는 동아세아에서 중앙아세아를거쳐 인도, 매소포타미아, 지중해여안으로 연결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6년에 발굴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삼성퇴(싼싱두이) 유적은 사천성 성도시 지역 이었으며 거대한 청동가면과 동상들 그리고 나무와 새들의 청동 조각물들은 동아세아문화와 인도문화 그리고 지중해 문화를 연결하는 특성들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아래 사진들) 이들민족은 반월산(mound)과 방죽을 파서 물을모아 치수하였으며 고구려문화에서 보는 음양오행 사상이 보이며 얼굴은 눈에 양쪼끝이 위로 오르고 광대뼈가 높다. 네발을 갖인 용의 모습도 나무의 동쪽에, 9마리의 새는 남쪽을 상징하여 물과 햇빛의 의미를 보였다. 어떤 가면은 눈이 튀어 나왔고 네발 달린 날개가 펴진 용의 눈도 앞으로 길게 나왔음이 특징이여서 이집트 문화에서 눈을 강조하고 시체에 가면을 덮는 풍습이나 여러 가지 예술적 표현에 공통성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생활풍습에 새들을 부려서 물고기들을 잡게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이러한 풍습은 일본과 중국의 계림에서 볼수있다.
한반도에서, 북경, 서안, 성도를 지나 티베트에 이르는 길은 인류혈연 M174 구룹이 한반도와 티베트를 연결하는 통로였으며 동인도와 동아세아를 연결하는 첩경이었다. 동인도에서 간지스강과 인더스강을 따라 간다라지역과 메소포타미아로 연결되고 드디어 지중해로 연결하는 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전에 동아세아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해양민족들의 내륙통로 였었다.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때 까지 이 통로를 사용한 무리들은 소그디안 이라고 불리는 무사들 였으며 지나는 나라들의 왕족들의 후원을 받았다. 이들이 교통에 이용하는 소, 말, 낙타들은 나무방울이나 쇠방울을 달아 소리나게 하였고 절에 목탁 모양과 같다. 당나라 때에 4000명의 외국 대사들이 세계 각곳에서 장안(서안)을 방문하였으며 그들 중에 중국에 채류 했던 부류들이 많았고 그들의 묘지들이 1999년에 발굴되었다.
동아세아에 한반도의 위치
한국인은 세계에서 제일먼저 지구상에 사계절이있는 온대지방에 도착한 해양민족이였다. 계절변화에 따라 생활방식이 변화되는 단련과 시간의 변화에 적응하는 기동성있는 생활과 습관은 열대지방의 생활방식보다 더 진취적이고 발전성이 있었기에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산업을 발달시키고 사회조직을 형성하였다. 한반도는 해양민족이 동북아세아 평원으로 침투하는 관문의 위치였기에 한반도에 남아있는 고인돌, 방죽, 봉토,및 지금까지 발굴된 신석기시대 유적지들은 참으로 중요한 세계역사 자료들이다. 한반도에 문화민족이 가진 신석기, 청동기, 철기문화는 한때 동남아세아에서 성행하였다가 지금은 드물게 보는 목조문화, 토기문화, 그리고 석기문화를 이어 더욱 발달된 모습이며 멀리서 큰돌을 체취하여 옮겨다가 고인돌을 세우는 한반도의 종교적 습관은 더욱 발달하여 이제는 한반도와 만주사이에 커다란 돌무덤이 성행하였다. 음양오행 천체종교와 연합되면서 원시형의 피라밑이 세워지기에 이른다. 흙으로 세우던 봉토 문화는 돌로 세우는 피라밑문화로 발달한것이다.
만주지린성 지역과 서안 평야에 흩어져있는 천여개의 피라밑유적들은 장군총이나 진시왕능이 있기 이전에 오래된 세월의 진화과정이 이곳에 있었을 가능성을 보인다. 에짚트의 파라오들중에 아세아인의 모습을 갖인 인물들이 있고 그왕족들의 모습이 이방민족사이에 피가 섞일때 나타나는 미모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을지문덕, 연개소문, 같은 네소리 이름이 많다. 에짚트의 문화유물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의 사회에 전무후무한 전혀 개별적인 문화현상으로 보아 그뿌리가 동아세아에 있지않을까 생각하게됨은 동아세아에 사만년전부터 일만년전 사이에 삼만년동안 있었던 선사시대의 역사적 가능성을보아 앞으로 연구할 과제가 깊고 멀다.
한반도의 위치와 중국건국역사의 관계를 관찰해보면 동이족 혹은 선비족의 이름이 건국역사 기록에 자주 나타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삼황오제의 건국신화가 있고 순임금은 황제헌원의 자손이며 황제헌원은 곰의 자손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들은 동이족이다. 중국역사를 통하여 중국 동해안과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는 한반도에 한부분으로 간주하여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중국동해안은 요동,산동,산서,하북,하남,지역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월남국에 이르는 해안선일대의 지역을 포함한다. 이들지역은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문화와함께 동아세아 문화의 요세이다. 이지역은 동이족의 생활지역이였으며 우리나라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의 백제민족이 다스리는 지역이였기때문에 중국역사에서 동쪽의 이방인 지역으로 부르는 곳이다. 동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이족의 생활지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주나라때 중앙아세아와 동인도지역의 원래 중국한족들이 이주해 들어오면서 섞여살기 시작 하였고 한자의 기록이 이때부터 시작된듯 하다. 이들지역에 지금도 한반도민족의 인상을 갖인 인구가 많고 특히 북부에 한국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
최근에 연구발표된 역사보고서에 한나라도 요나라 사람들에의해 건국되었다고한다. 삼국유사는 중국의 사기보다 훨시 후에 불교승려 일원이 고려시대에 기록하였으나 건국신화에 단군왕검이 환웅의 자손이고 환웅은 곰의 자손임을 설명함이 중국건국신화에 동이족의 부분과 연관됨을 볼수있다. 이지역 지하자원중에 석탄은 제철에 필요한 고열을 공급하여 세계에 어느곳보다 먼저 일직부터 청동과 철기생산을 시작하였다. 상나라 청동기문화와 동시에 시작된 철기생활도구와 군사무기는 인류역사에 혁명적인 변화를 갖어왔고 동아세아 유목민이 세계를 지배할수있었던 도구였다.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만주지역에서 유목민으로 성장하여 기마민족이되고 철기무기를 개발하여 하,상,주,진나라때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침략하고 유럽에 로마를 정복하였다.
후에 11세기에 금나라와 몽골들이 이들 후손들이며 연합하여 세계를 정복하고 아세아와 유럽을 통일한 세계대제국을 세우고 13세기까지 동아세아에 위치한 지금의 북경이 세계의 수도였다.
동아세아 문화와 문명속에 대한민국
동아세아에서 시작되는 세계종교역사를 관찰해보자. 원시시대 토속종교는 자연종교로 그리고 가족시체를 매장하는 습관은 조상종교로 성장하였다. 동아세아의 자연종교는 천체사상을 포함하여 음양오행 종교의식으로 고구려 무덤에 보존된 도교형식으로 유학이 발달하였고 인도의 흰두교도 자연종교의 한부류이다. 동아세아의 조상종교는 씨족사회와 국가체제의 성장과함께 가정과 사회의 도덕을 세우는 유교로 발달하였다. 도시국가들과 제후국들을 통합하여 제국체제로 성장하면서 제국종교들이 시작할무렵에 동인도 간지스강 유역에서 2600년전에 불교가 시작되었다.
그후 6백년동안 유럽에 그리스의 도시국 왕들이 중국과 인도에와서 불교승려가되어 동남아세아의 종교, 학문, 예술, 등을 배워가서 그때부터 서남아세아의 페르시아문화와 유럽의 그리스문화가 시작되었다. 동아세아의 철학과 인도의 불교를 가져오는 동방박사들이 별들을 따라 예루사렘에 도착했을때 드디어 예수가 탄생한다. 그후에 다시 6백년동안 유대교의 구약과 합하여 이루어진 천주교는 동유럽에 분포되고 구약을 바탕으로하는 회교도가 시작되었다. 그후에 다시 6백년이 지나는 동안 동유럽에 천주교는 침체되고 동아세아에서 몽골의 징기스칸이 유럽을 점령하고 중세암흑기속의 유럽인들을 잠에서 깨웠다. 서유럽인들이 동아세아 문화와 문명을 배워 출판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을 얻어서 문예혁명이 일어나고 16세기에 인본주의가 제국주의에 반항하면서 마틴루터의 종교개혁과함께 개신교가 시작된다.
서유럽의 항해사들은 명나라의 항해지도를 배우고 대양을 탐험하고 서유럽의 세계적 침략이 시작된다. 해가 지지않는 대영제국이라고 부르는 영국에서 쟌 외슬리의 감리교와 쟌 칼빈의 장로교등 개신교가 미국으로 전해지고 이만년이 넘도록 거주해온 동아세아인 원주민들을 미러내고 서유럽인들이 카나다, 미국, 멕시코를 세웠다 세계일차대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이차대전에서 승리를거둔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과 정치력으로 서유럽의 기독교를 계승하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계에 포진하는 동안에 회교도를 국가정책으로 포교하는 회교도제국들과 충돌하였음이 오늘의 현실이다. 동아세아에서 도교와 함께 시작된 물과생명의 상징인 용은 개신교이전까지 세계모든 종교에 그위력과 무서운얼굴로 나타났기에 아프리카와 중미대륙에 고대종교건축물에서까지도 볼수있음은 육만년역사의 동아세아문화가 세계각대륙으로 분포되었음을 증명해준다. 고구려 의 사신도에서 보여주는 동쪽의 사징생물인 용의 모습과 그 얼굴은 고대문화 어느곳에서나 볼수 있으며 서남아세아 문화민족중에 가장 오래된 사마리안들이 남긴 가장 오래된 기록도 용에관한 기록이다.
강하구에 정착한 동아세아인들의 항해기술은 일만년동안 선진하였기에 서기 1,400년까지 세계를 지배하였다. 철제품 나침판을 발명하여 태평양을 횡단하였다. 계절따라 변하는 바람의 방향, 바다물의 흐름을 이용하였고 고대인들은 겨울에 금식하며 동민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원양항해를 할 수 있었다. 복건성 충주박물관에 사천년전 하나라때 합판으로 만들어진 목선이 보관되있다. 애짚트의 투탄카먼이 3300년전에 타던 통나무배는 양자강하구에 지강성 항주부근 여러곳에서 7000년전에 사용되었음이 발굴되었다. 해양국가 상나라가 3050년전에 유목국가인 주나라의 정복을 당했을때, 25만명의 귀족들과 해양민들이 태평양 여러나라로 망명하였다. 그중에 생존자들이 태평양 건너 남미에 도착하였고 올맥문화가 시작하였기에 에즈택과 마야문화는 상나라문화와 공통성이 많다. 2210년전에 진시황제가 삼천명의 약사와 항해사들을 바다에보네 불노초를 구해오게하였다. 상나라인과 지시황제 약사들은 우리나라에도 정착하였을것이다.
2024년전에 중국의 비단을 실은 배가 인도의 뱃길따라 지중해 그리스에 왕래하였다. 한반도에 해양국가도 백제와 왜나라가 한반도에 있기 이전에 이러한 활동들이 있었음은 우리나라 갑골문자 숫자표기와 미대륙에 마야문화의 것과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동이족은 중국동해안(황해) 일대를 점령하고 지배하면서 중국의 많은 국가들을 건국하였고 그유래는 백제 때까지 지속되었다. 백제동성왕때에 같은동이족이 세운 북위를 지금의 대동지역에서 밀어내고 황하건너 낙양으로 옮기게했다. 대동에 운강석굴은 백제문화와 공통성이 많고 낙양에 용문석굴은 북위에서 수나라와 당나라를거쳐 완성되었기에 우리나라 통일실라문화와 공통성이 많다. 신라때 장보고의 활동도 이조전라감사 이순신의 활략도 백제해양문화의 전통이라 볼수있겠다. 동인도의 잔지스강유역에 불교문화가 한반도와 황하유역에 해안선 뱃길따라 연결되고 간지스강유역 아요디아에서 자라난 허황옥은 뱃길로 한반도에 이르러 가락국의 김수로왕을맞고 왕비가되었다. 한반도에 세워진 백제, 왜, 신라, 고구려 국가들 이전에 우리가 모르는 해양국가가 있었고
수만년의 역사가 있었음을 상상할뿐이다.
동아세아 국가들의 경제적지위가 위상됨에따라 세계역사도 동양사에 무게를두어 공정한 세계관을 세워감이 마땅하다. 고구려문화가 우리민족의 역사임을 확인하고 세계학문의 근원이 그리스철학자들에서 시작된듯한 잘못을 교정해가면서 인도아리안을 내세우는 서양사관을 배제하고 동아세아에서 세계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증명하자. 세계인류분포에 가장 선진지역인 동아세아는 사계절기후변화에 마추어 육만년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반복하는 동안에 생활에 질서가서고 해양활동과 내륙활동의 융합된장소, 농경민과 유목민이 경합하는 지점에서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만주와 황하양자강을 포함한 지리적토대로 인류문화와 문명의 주역이요, 종주국민이 였음은 지구역사의 섭리요, 진리로서 밝혀지기를 원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