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눈으로 보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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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부터 미국역사학계에서 과거에 독일과 프랑스의 유럽학계에서 설명해왔던 아세아 문화발상론에서 메소포타미아와 유럽문화 발상론으로 바꾸어놓는 경향이 나타났다. 최근에 혈연유전학의 발달로 인류의 아프리카 발상론은 이런경향을 더욱 부추기고있다. 유럽과 서남아세아의 고고학 발굴에의한 실물입증학설과 식민지 정당성을위한 정치적역사론은 현재학술 경향을 더욱 보강하였다. 전쟁과 빈곤에서 학술활동이 결핍된 아세아는 자신의 역사를 설명할 능력이 없었다.
2백만 년 전부터 일어서서 두발로 걷기 시작하는 루시의 후손을 호모사피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국의 구석기 문화는 이미 북경원인이 살았던 시기보다 백만 년을 훨씬 앞선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운남성 원모현에서 발굴된 원모인은 이미 170만년 전에 생활했음이 확인되었고, 섬서성 남전에서 발굴된 남전인은 약60만 년 전에 활동했다.
50만 년 전 동아세아의 북경원인은 같은 단계의 자바원인과 달리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굴됨으로서 학계를 흥분시켰지만,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증발되어 세계적인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북경원인과 같은 지층에서 불에 탄 뼈와 다량의 사슴, 코뿔소, 호랑이 하이에나 등의 동물의 뼈, 그리고 인공 석기들이 발견 되었다.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에서 직접 제작한 도구를 이용하고, 훨씬 거대한 짐승을 사냥하며 살았다. 그들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동굴 집에서 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불의 사용은 인류의 성장에 첫걸음이며 도구 사용과 함께 인류의 발달사에서 아주 중요한 진전이었다.
번개나 자연적 불을 몹시 두려워했으나 점차 생활에 적극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불은 밤에 자자는 동안 생존을 위협하는 맹수들의 침입을 막고 엄습하는 추위로부터 인간을 보호했으며, 식량을 익혀 먹기 시작하자 인류의 신체는 더욱 튼튼해졌고 두뇌는 더욱 발달하기 시작했다.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된 현대인류가 어머니의 젖을 먹듯 자연이 공급하는 음식을 먹으며 어머니의 품처럼 따듯한 아프리카에서 자라는 동안 다른 대륙으로 물길 따라 외출해 보았지만 북경원인처럼 기후변화에 오래 적응하지 못하고 혈연이 지속하지 못하였다.
new genetic evidence reveals clues to the first human journeys에서 보여주듯 현대인이 나타난 때는 고작 10만 년 전이었다. 그들은 아직 언어가 없어 소리와 얼굴 짓과 몸짓으로 소통하며 바닷길을 따라 해 뜨는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음식이 풍부하고 밤에 안전하게 잠들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계속해서 물길을 따라 움직였다. 50,000년 전경에 동남아세아에 이렀고 온화한 생활환경과 자원이 풍부한 곳에 정착하게 되어 씨족사회와 부락이 형성되고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동아세아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죽음의 계절 겨울을 맞았다.
해양민족이 자연의 겨울철에 도전하여 인류의 자연을 극복하는 경험이 동아세아에서 일어난다. 한반도, 만주, 몽골, 지역의 민족은 여름과 겨울을 반복하는 훈련에 익숙해진 현대인류의 첫 선구자가 되었다. 자연에 의존해온 동물적인 생활에서 자연을 극복한 인위적인 현대인의 생활이 동아세아에서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사계절을 가진 온대지방에서 시작하였다. 동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은 빙하기가 풀리는 지중해 지역과 동유럽으로 전해졌으며 동아세아의 혈연인 북남미 대륙에 원주민의 문화와 문명으로 전해졌다.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은 초원을 달리는 늑대라고 정복당한 모든 나라가 무서워했다. 중세기 암흑시대에서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지구의 반대편에 동아세아를 알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Divisament dou monde)에 기록된 것처럼 1274년 원(元)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의 여름 궁전이 있는 상도(上都 네이멍구자치구 남부)에 도착했다. 17년 간 원나라에 머물면서 그 수도 대도(大都 베이징)는 물론, 산시(山西), 산시(陝西), 쓰촨(四川), 윈난(雲南),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장쑤(江蘇), 저장(浙江), 푸젠(福建) 지역들을 여행했다. 그는 양저우(揚州)에서 관리로 일하는 중에 공주의 호송단에 참가하여 수마트라, 말레이, 스리랑카, 인도 서남부 말라바르를 거쳐 1295년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동방의 막대한 부유와 풍요의 이야기는 유럽인들의 호기심과 탐험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유럽은 칭기즈칸의 폭죽을 보고 총을 발명하게 되고 칭기즈칸의 대포를 배워 나포레옹은 아프리카까지 진군하였다. 활을 쏘는 원주민들의 영토를 빼앗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세계지도가 만들어지고 인류역사를 지중해에서 시작한 것처럼 이야기하였다. 옛날부터 역사는 승자(winner)의 기록이라고 한다. 나는 패자(loser)의 기록을 보고 싶어 했기에 새로운 눈으로 그늘에 가려진 사실들을 찾게 되고 새 시대에 걸맞은 역사관을 나누려고 이 글(essay)을 쓰기 시작하였다.
한반도와 중국 동해 연안에 신석기시대부터 인구밀도가 높고 훌륭한 종교문화와 금속문명을 갖추어 그들이 원양항해를 통하여 남미대륙과 아프리카에 연결되는 가능성을 보면서 세계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이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역사관은 학술 논문이 아니다. 건축가의 상식에 근거하여 종합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확인된 부분을 최대한으로 보완하면서 건축가의 눈으로 보는 생각과 상상을 펼쳐 수필처럼 써내려간다.
인류의 역사를 한사람의 생애에 비교하면 하나의 단세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기가 태어날 때 네발로 기기 시작하고 두발로 뛰어다니며 소리 내어 노래하고 춤을 추다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나이 때부터 인류는 어느 나이까지 성장했으며 지금은 어느 나이인지 그리고 미래의 여생은 어떤 삶이 이어갈 것인지 이야기 나누고 싶다.
지금까지 세계역사는 유럽 국가들이 아세아, 오스트랄리아, 북남미 대륙을 침략한 후부터 백인 우월주의 사상에서 연구되고 발표된 내용을 세계의 어린아이와 젊은이에게 교육해 왔다. 거기에 동조해온 학자들은 보수적인 위치에서 벗어남을 두려워해왔기에 인류 문화가 동남아세아에서 시작되었다는 원래의 상식을 거론하면 구식 동양학파(Orientalist)라고 멸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칭기즈칸 이전의 세계역사를 보면 동아세아가 인류문명과 문화를 주도해 왔음을 확실히 볼 수 있다.
상식을 존중하는 학자들은 지금도 종합적 학술자료에 근거하여 상고시대 문화와 문명은 중국과 인도에서 시작하였고 후에 서남아세아와 지중해로 왔음을 추측한다. 인도의 종교문화 발상을 보면 힌두교와 불교가 동부에 간지스강에서 발상했음을 본다. 기워전 수천년동안 북부인도를 지배한 인도아리안들은 중국의 중앙아세아인들이였을 가능성이 많다. 동남아세아의 농경생활에의한 인구증폭은 당연히 인구가 간지스강에서 인더스강으로 옮겨갔음이 타당하다. 메소포타미아에 서마리안민족의 문화도 동아세아와 연결되는 공통성이 많고 아프리카 나일강유역의 문화도 동아세아 문화와 연결되고 상호공통성을 볼수있음은 남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문화도 동아세아와 연결되고 상호공통성을 보는바와 같은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는 큰 파도와 작은 파도 섞여 함께 오르내리며 끝에서 끝으로 전해 왔다. 지역적으로 일어난 작은 파도가 모아서 큰 파도를 이루면 큰 파도는 멀리 멀리 전해졌다. 인류 문명과 문화의 흐름은 연속성을 유지한 결과이지 지역적인 작은 돌연변이만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인류 문명과 문화는 지역적으로 나타나는 작은 파도가 아니고 멀리서 전해온 큰 파도의 결과이다.
혈연학적 동아세아의 위치
이제는 역사를 기록에 의존해서 설명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혈연학적 역사에서 시작하여 고고학적 역사를 관찰한 다음, 기록을 보는 역사로 보다 더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한 때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유전학을 통한 세계 인류 분포역사(Evolution’s Genetic Footprints)는 Cavalli-Sforza의 DNA 연구팀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1998년에 그 내용을 시카고 트리뷴에 연재한 Paul Slopek은 푸릿쳐상을 받았다. 2008년 7월 scientific american 잡지에 발표된 Prehistoric Migrations에 관한 article은 new genetic evidence reveals clues to the first human journeys를 발표하였고 national geography는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보수적 역사학자들의 의문스런 반응으로 갑자기 꼬리를 감추고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이미 오래 동안 인정되었던 합리적인 상상을 다시 시작하는 기회를 주기에 충분하였다.
학자들에 따라 역사의 연결성을 부정하고 독자적 돌연변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한 예외는 부분적 사소한 창작에서 생겨날 수 있지만 역사의 흐름은 생물의 생명처럼 오랜 진화를 거쳐 나타나는 결과이지 돌연변이 생명이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인류역사에 모든 사건은 인과응보의 연결성으로 이어져 있다.
혈연학적 지놈(Genome)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인류가 10,000년 전경에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50,000년 전경에 동남아세아에 이렀음을 설명한다. 고고학적 발굴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40,000 년 전에 북미 대륙에 이렀음을 보여준다. 현대인류는 한반도 주위에서 처음으로 겨울철에 도전하여 50,000년 전경에 자연을 극복하고 만주지방에서 내륙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듯하다. 아프리카를 떠난 현대일류는 아세아 대륙의 어느 곳에서나 겨울과 싸우는 도전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해양생활처럼 풍부한 음식의 공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세아에서의 도전은 바다와 끊임없는 인구가 있었기에 자연을 극복함이 가능했다. 해양민족이 내륙민족으로 적응변화하면서 만주, 몽골, 티베트, 동유럽으로 이주해갔다. 그후 35,000년 전경에 아세아의 현대 인류는 유라시아에 분산했음을 보여준다.
19세기의 영국의사, Dr. J. Langdon Down은 퇴행성 증후군(Down syndrome) 증상을 가진 환자를 Mongolism이라고 불렀다. Dr. Down은 현대 인류의 초기에 미성숙한 모습을 동아세아 사람의 모습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민족이 공통적으로 가진 이 퇴행성 증후군(Down syndrome) 증상 환자의 모습이 몽골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50,000전의 인류인 동아세아인은 35,000전의 서남아세아나 유럽 사람의 모습과 다르다. 눈이 가늘고 광대뼈가 높고 코가 작은 얼굴에 치아형태도 다르다. 월남, 대만, 동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동유럽, 시베리아, 등의 사람들 얼굴과 치아의 구조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오래된 몽골리즘의 특징을 가졌음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인 듯하다. 그들은 50,000전의 미성숙한 인류의 모습을 어떤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보전해왔다고 이해된다. 다른 세계 어느 곳 보다 일찍 지구상에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문화와 문명도 일찍 시작한 민족인 듯하다.
유럽, 북시베리아, 북미북방은 20,000년 전경에 기후의 온난화로 빙하가 제거되면서 처음으로 현대 인류의 생활권에 노출되었다. 그 후에 동아세아인들은 터키 항가리 핀랜드까지 진출하는 동안 이미 지금의 실크로드는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지중해로 연결되는 통로를 개발한 듯하다. 기원 전후 경에 훈족은 계속해서 서유럽으로 이주해가서 로마를 압박하고 천년 후에 칭기즈칸과 그의 후손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통로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었다.
최근 일본, 한국과 중국 고고학의 발전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발굴된 유물들에 의하면 지금까지 서해안 북단에 위치한 요하 주위에서 동아세아 문화의 가장 오래된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1987년 요하상류 적봉시 서북쪽 소하서촌에서 흙으로 만든 얼굴과 많은 유물들이 BC7000-BC6500 소하서 문화로 지금까지 발굴된 서남아세아 문화(BC4000)보다 3000년 앞선 문화로 소개되고 있다. 황하문명(黃河文明)에 비해서는 2000년이 앞서고 있다. 황하문명(黃河文明) 역시 한민족(韓民族)이 중국한족 이전에 중원(中原)과 황하강(黃河江) 유역에서 역법(曆法), 천문지리, 의학, 율법, 의식주 생활을 고도로 발전시켜 일으킨 문명이기도 하다. 동아세아의 신석기시대 토기문화는 해안선 따라 미대륙과 지중해에 전해지고 그리스가 토기문화의 절정을 이룰 때, 동아세아는 이미 금속문화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스의 토기 사진과 상나라 청동기 사진) 춘추전국시대(c. 550 BCE)에 문자가 새겨진 동전이 유통되었다.
동아세아는 한반도의 태양신을 따르는 구석기 시대를 지나면서 8.000년 전부터 조상 종교와 천체종교의 유물들이 나타난다. 신석기시대 후반에 이르러 3.000년 전에 이미 철기시대에 이르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한다. 신석기세대에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고 청동기 도구를 사용하는 생활이 시작하였다. 토기문화는 고대문화 후기에 절정을 이루었고 10세기 전후에 고려자기가 대량 생산된다.
세계의 종교를 관찰하면 아프리카의 호모사피엔이 태양의 집을 찾아 새벽이면 동쪽으로 이주해 오면서 하늘에 달과 별들을 보며 천체와 자연종교의 초기적 발단을 이루고 동남아세아에 이르러 씨족사회와 부락사회를 형성하며 조상종교의 초기적 발단을 이루었다. 세계의 언어의 뿌리가 동남아세아에 모여 있듯 현대 인류의 언어는 동남아시아에서 60.000년 전경에 시작하였다가 50,000년 전경에 동아세아에 이르렀다. 싸우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원시사회에서 사회적 언어 형식을 갖추게 된 듯하다. 30,000년 전부터
자연종교, 천체종교, 조상종교등의 원시종교 양식이 형성된 듯하다.
부락사회는 제후국이나 도시국가 형대로 성장해오다가 제국이 설립하면서 동아세아의 논어와 주역 같은 유교의 경전이 출간된다. 인도의 힌두교와 동아세아의 자연 종교는 공통성이 많은 점을 보면 동아세아의 종교적 형식이 어느 땐가 남아세아에 전해진 듯하다. 열대지방의 문화와 문명은 온대지방에서 시작한 후에 그 경향을 따라오기 때문이다. 동아세아에서 시작한 제후국 종교와 철학이 동인도에 전해지고 기원전 600년경에 동인도의 갠지스 강에서 제국종교 곧 불교가 탄생하여 서남아세아의 유대교, 기독교, 회교도로이어지고 동유럽의 천주교로 이어진다.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동쪽에서 찾아온 기독교의 근원을 암시한다. 천주교의 예배절차에 불교형식을 많이 볼 수 있음이 이러한 연관성을 뒷받침한다. 제국주의종교가 동인도에서 결성되고 서인도와 동아세아에 전해지는 동안 지중해의 그리스 왕들이 인도와 중국의 불교사찰에 찾아와서 불교승려로 수련하였다. 그 때 아세아의 철학과 문화를 배워갔다는 기록이 인도와 중국의 불교기록에 명시되었지만 유럽학자들은 외면하기만 한다.
세계의 종교가 동아세아의 도교에서 시작하여 서유럽의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시간을 거쳐 동아세아 문화의 파도가 서유럽에 이르렀다. 종교역사를 통하여서도 세계문화와 문명이 동아세아에서 시작하여 아세아와 유럽대륙을 횡단하여 서유럽에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반도에 도교문화는 고구려 문화에 뿌리가 깊고 고구려 고분에 많은 유적을 남기었다. 불교문화는 백제가 동성왕 때 산서성에 북위를 점령하고 북위는 불교사찰 운강석굴 작업을 중단하고 황하남부 낙양에 용문석굴로 옮겼다. 이 무렵(494년)에 북위의 불교문화는 한반도 남단 백제에 전해지고 후에 신라와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한반도의 민족이며 한반도의 정치 세력이 이주해 들어가 세워진 한반도의 청치권이며 문화권이다. 칭기즈칸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대륙문화를 투입했을 때 일본은 신의 바람(가미가제)의 도움으로 대륙영향에서 고립하였기에 한반도 옛 문화를 지금까지 잘 보존해오고 있다. 일본 언어는 한국 언어와 같은 문장이며 오직 단어의 발음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일본의 문자도 중국의 한자를 이용하던 한국의 고대문자 형식을 잘 보존하는 모습이다.
인류의 현대문명은 12세기에 동아세아의 칭기즈칸이 아세아와 유럽을 통일하였던 때부터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서 보듯 그때 유럽은 동아세아를 알게 되어 세상에 눈을 떴다. 칭기즈 칸이 사용하는 파죽(대나무에 화약을 넣어 복파)을 배워 유럽은 총을 발명하게 되었다. 칭기즈칸의 대포를 보고 유럽 국가들도 대포를 만들었다. 중국의 나침판을 배우고 명나라의 해양지도를 보고 해양기술이 발달하였다.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했듯이 유럽 국가들은 아세아에 침략했다. 총을 쏘는 군대가 활과 화살을 어깨에 메고 창을 손에 든 나라에 쳐들어가 땅을 빼앗고 지금의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유럽인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사고팔았다. 정복한 지역 언어와 고유문화를 멸시하는 백인들의 침략이 세계를 지배해왔다. 미국의 원주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그들의 생활권에서 추방되었는지 그리고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이나 생활 지역을 빼앗긴 원주민들이 겪었던 고통은 인류 역사의 상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일차 세계대전과 이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세계의 나라들은 가까워지고 지구는 자꾸만 좁아졌다. 인류의 횡폭은 자연동물의 생활권을 빼앗고 지구의 공해는 인류자멸의 길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인류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인류의 미래를 생각함은 필연의 길을 찾는 노력이다. 그 방법은 인류의 역사를 한사람의 생애에 비유하여 생각하는 방법이다.
어머니의 배 속에 간직된 사람이 태어나는 비밀은 지구상에 인류의 과거를 이해하는 해답이다. 하나의 난자가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제일 먼저 찾아온 정자를 받아드려 복합세포가 되고 미생물 모습에서 작은 벌래 모양이 된다. 물고기 모양, 꼬리와 네발달린 파충류 모양, 그리고 아기 모양이 되어 체액에 잠겨 헤엄치다 어머니 몸 밖으로 나와 공기를 처음 마시며 소리쳐 운다. 몸을 비틀어 움직이다. 네발로 기어 다니다 드디어 두발로 서서 걸어간다. 이것이 과거에 인류의 진화과정이었다. 이것이 진화론이고 과학이며 현대인의 상식이다.
성경을 따르는 기독교에서는 부정하려 하지만 현대인이면 과학, 예술, 종교의 언어를 분리하고 사고방식도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지금처럼 비참하고 미숙한 종교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종교적 사고방식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어머니에 의지하고 살았을 때부터 시작하였다. 그런 후에 인류의 아기 시절에 고등 동물의 감정을 얻게 되어 말할 줄 모르는 때에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며 예술적 감각으로 생활을 하는 때가 뒤따랐다. 가족과 이웃의 사회생활에 노출되면서 언어를 배우고 논리적, 이성적 사고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과학을 알게 되었음이 인류의 성장 과정이다. 현대인이면 하루 빨리 이성, 감성, 영성을 분리 이해하고 혼돈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살고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졌으며 가장 많은 언어가 모여 있는 곳이 동남 아세아이고 생성에 의한 종교의 발상지, 감성에 의한 문화의 발상지가 동남아세아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시작된 인류활동의 영향력은 서남아세아를 통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전해지고 동아세아를 통하여 미대륙으로 전해졌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아세아대륙의 남단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고 동남아세아에서 해안선 따라 강 하구에 교통이 편리하고 땅이 기름진 곳에 정착하여 가족과 부락단위 생활이 시작되었다. 동남아세아의 기후와 자연조건은 자라나는 유년기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지구상에 보금자리였고 인구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지역이었으리라 상상한다.
“Eden in the East by Stephen Oppenheimer 1998”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의 최근 발굴보고에 태국에 농산물 유적은 15,000년전의 일이며 쌀농사의 유적도 9,000년전으로 추적되며 월남의 청동유물들은 6000년전으로 소급한다. 곡식을 갈아서 씨겁떼기를 벗기도 곡식가루를 만드는 둥근맷돌은 숫돌과 암돌사이에 마른 곡식을 넣으면서 돌리면 눌린돌 사이로 껍질이 벗겨진 곡식가루가 밖으로 밀려 나오기에 도릿개라고도 하는데 인도네시아 섬들의 고대유물들 중에 26,000년전에 사용되었으며 동남 아세아 국가들과 남북미 원주민들 생활에 필수품으로 최근까지 사용되어왔다. 이들 농사 도구는 에짚트와 서남아세아에서 12000년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유럽 국가들이 세계 대륙들을 정복하고 백인 우월사상에 잠겨 이집트와 그리스의 지중해 문화가 세계의 문화의 시작인 것처럼 생각하고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기에 서남아세아의 현대 인류의 문화와 문명이 가장 오래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에 고인돌을 세우고 금속문화를 시작한 지역이 동아세아이며 그리스가 토기를 만들어 사용할 때 동아세아는 이미 청동 금속 문화로 앞서간 사실을 보면 세계역사를 다시 연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