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인류의 미래

원래 사이트에서 비공개였던 글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한사람의 생애에 비교하면

인류의 진화는 한사람의 생애와 비교된다. 인류의 유아기에는 어머니가 공급하는 음식과 어머니의 보호에 의지하고 살다가 이두가지 조건이 중단되면 생명도 멈추었다. 그와 같이 지구상에 호모에렉터스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되어왔다. 그러다가 후에 나타난 호모사피엔들은 더욱 진화된 생성, 감성, 지성의 능력을 갖추었기에 자연이 변화하는 환경에 조금 더 쉽게 적응하여 생존하였다. 인류의 짐승생태에서 사람생태로 진화하는 과정이 일백만년내지 이백만 년을 거쳤고 드디어 지난 십만년 내지 이십만 년 전에 이르러 인류의 새로운 호모사피엔이 태어나고 인류의 유아기가 최근 이만 년 전까지 지속되어왔다가 드디어 인류가 동남아세아에서 농경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때부터 인류의 아동기가 시작되고 씨족사회가 부락사회로 성장하면서 언어의 필요성이 급증하여 언어의 발달과 함께 지성의 성장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인류는 아동기에 겪는 신체적 정서적 성장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자라는 아동은 부모의 보호를 받는 중에 다른 아동들과 놀기를 좋아하듯이 씨족사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웃에 다른 씨족사회와 연관되는 사회생활을 더 많이 하게 되어 부락사회가 형성되고 자립, 평등, 경쟁의 능력을 경험하였다. 그중에 자립능력은 자연의존에서 인위적 자립을 시작하는 생활 형태이며 개척해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능력이었다. 평등의 능력은 자연의 혜택을 같이 나누어 공존하는 본능이며 원시사회생활에 필수 조건이었다. 경쟁의 능력은 보다 낳은 선택하여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본능이며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인류의 진화는 한사람의 생애처럼 아이가 아동기에 언어를 배우면서 자라듯이 동남아세아 해안지역에 6만 년 전부터 거주해온 현대인류가 부락생활을 시작하면서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언어학자 조하나 니콜스는 인류의 언어는 빙하기 이전에 동남아세아 해안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동남아세아 언어의 시작은 남부에 오스트로네시안과 북부에 오스트로에시아틱으로 나누어진다. 남부언어는 섬나라들과 남인도의 드라비디안 그리고 아라비안과 북아프리카에 하미토세미틱으로 연결되어 현대언어로 쓰이고 있다. 북부언어는 시노티베탄으로 동부와 중앙아세아일대에서 쓰였다가 북으로 우랄알타이, 서남으로 인도유러피안으로 성장하여 현대 세계에 가장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북부언어의 성장과정에서 과거에 남부언어지역에 이주해 들어오면서 남부언어를 북부언어로 대치하는 경향이 많았다.

조하나 니콜스는 언어 속에 “주어 동사 수식어”,과 “주어 수식어 동사”의 두 가지 정리된 언어형식에 무질서하고 정리되지 못한 언어형식을 포함하여 세가지 언어의 역사적 연관성을 설명하였다. 우리나라와 일본 몽골 언어는 두 번째 형식이나 유럽과 중국 언어는 첫 번째 형식에 속한다. 중국동해안 일대에 원래는 두 번째 형식이었으나 후에 첫 번째 형식으로 교체되었다. 미개발지역 언어에 무질서형의 세 번째 형식이 많고 북부언어에 두 번째 형식이 많고 남부언어에 첫 번째 형식이 많다. 세계에 모든 언어형식은 동남아세아에 있고 그들의 뿌리도 동남아세아에 있음이 분병하다.

인류가 성장하는 아동기에 그림 그리기를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였다. 지칠 줄 모르고 뛰어놀기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뭐든지 보고 만지고 알고 싶어했다. 그럴수록 지성은 빠르게 성장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졌고 묻고 싶은 의문도 많았기에 이웃과 대화는 활발해져서 인류의 부락사회가 빠르게 도시국가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도시국가에는 왕위를 중심으로 주권이 있고 각기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국민이 있고 그들이 소유한 영토가 있었다. 도시국가들 사이에 협조와 경쟁이 있었고 때로는 알륵이 있었다. 아이들이 쉽게 필요에 따라 환경에 적응하듯이 협조와 분쟁은 더 자주 바뀌었다. 알륵을 피하고 협조하는 관계로 연결된 여러 도시국가들은 제후를 선출하여 제후국을 세우기도 하였다. 후에 최근역사에 이르면서 제후국들 사이에 전쟁하여 통일하거나 혹은 제후들이 제왕을 선출하여 제국을 세우는 때로 이어진다.

동아세아에 나타난 제국은 하나라 이전에도 제국조건을 갖춘 국가들이 오래동안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지금까지 역사문헌 기록으로 밝혀진 제국은 하,상,주,진,한,수,당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반도와 왜나라, 요동과 산동반도를 지배했던 백제대국이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백제 이전에 있었고 그 이전에도 해안제국들이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동아세아에 문화와 문명의 근원이 한반도와 황해 해안지역에 신석기시대부터 방죽을 파서 농경에 필요한 물을 모으고 흙을모아 산을 만들다가 고인돌을 세우면서 종교중심의 사회조직이 형성되어 압록강유역에 적석총(피라미드)을 짓는 역사적 단계를 거쳐 진화현상을 고유하게 이 지역에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퇴해책은 사람이 만든 산과 사람이 만든 방죽을 설명하는 책이다, 동아세아에 방죽을 파서 물을 모으고 그 흙을 모아 산을 짓는 생활풍습은 동인도에서 황해해변 따라 한반도 일본을 거쳐 북미대륙에 오대호 일대와 미시시피강 유역에 보여주는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이다. 유럽에는 댄마크와 영국해변에 빙하기 중에 전해진 작은 유물들이 남겨있다. 이들 농경문화는 수천년 혹은 수만 년의 세월을 거쳐 다른대륙에 전해진 현상이다.

이들 동아세아의 도시국가, 제후국가, 대제국의 체제는 사람들이 농경과 유목을하며 인구가 집중하는 곳으로 전해져서 동아세아에서 남아세아, 서남아세아, 동유럽, 그리고 서유럽으로 전해져갔다. 해안지역을 따라 갠지스강 유역, 인더스강 유역,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지중해에 나일강 유역, 그리스, 드디어 로마로 장시간의 역사를 통하여 유라세아 동쪽 끝에서 서쪽을 향해 점차적으로 전해져갔다.

언어의 뜻을 그림그린 문자로 쓰기 시작함도 대나무에, 짐승 뼈에, 거북이 등껍질에, 나무껍질 옷감에,
비단에, 흙 그릇에, 돌판에, 쇠붙이에, 드디어는 종이에, 가장 오래고 가장 많은 기록이 동아세아에 축척되어 있다. 그림에서 글씨로 진화한 모습도 동남아세아에 수없이 많고 문자의 종류도 다양하게 많다. 현존하는 문자는 7천 년 전의 것들이지만 해빙기 이전부터 써졌음이 추측된다. 사마리안이 흙에 구어 남긴 기록도 동아세아의 용에 관한 설명으로 풀이된다. 수천 개의 중국한자 글자모양도 2600년 이전에 정립되어 도교의 경전 주역에 사용되어 공자가 젊은 나이에 주역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수천 년을 거친 문자의 진화 과정을 상상해보면 동남아세아에는 유럽의 해빙기이전에 이미 문자형식의 모습이 부족사회에 존재하였음을 상상케 한다.

동남아세아 제국들의 언어, 문자, 과학은 아동기 인류의 지능성장 능력 이였다. 6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까지 해안에서 채집생활하며 씨족사회 형태로 살다가 3만 년 전부터 2만 년전 사이에 채집과 농경으로 정착된 부족사회로 인구가 팽창하면서 강을 따라 내륙으로 이주해 들어가고 해안선 따라 아메리카대륙과 유럽해안으로 이주해 들어갔음을 추측할 수 있다. 농경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소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흙을 파는 쟁기도 곧 만들어 쓰이기 시작된듯하다.

동남아세아에 고고학과 발굴활동이 활발해지면 차츰 이러한 상상들은 빠르게 확인되겠지만 서남아세아의 건조한 기후지역에 돌연히 농경해안민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함은 해빙기와 때를 맞추어 1만년전경부터이다. 이들 농경해안민족들이 이미 정립된 문화와 문명을 구비하고 이곳에 이주해오기 때문에 그들의 고향은 동남아세아이며 그들의 문화와 문명의 뿌리는 수만 년의 진화과정을 거친 동남아세아에 있음을 상상케 한다.

한나라 기록에의하면 상나라이전에 하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이전의 대량의 상나라 갑골문자의 기록들이 아직 박물관 저장실에 보관되었을 뿐 읽혀지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하나라이전에 2만 년 동안 동남아세아 강 하구에 많은 도시국가들과 재후국들이 존재하면서 그중에 인더스강유역에 우르 도시국을세웠음을 볼수있다. 우르지역 발굴기록에 가장 오랜 층에서 동아세아인들의 인상을 갖인 종교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그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사머리안들이 동남아세아의 언어와 문자를 갖이고 나타나며 바비로니아에 함무라비법전이 소개되고 지중해에 새와 소를 숭배하는 민족들이 나타며 곧 이어서 금속문화가 나타난다. 이들 문화는 급작한 발명이나 발견이 아니고 일만 년 이상의 진화과정을 거처서 나타나기에 더많은 인구와 더 오랜 역사를 갖춘 동남아세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라와 상나라가 자리한 양자강과 황하의 문화는 매소포타미아와 나일강의 문화로 전해졌으며 지중해에 나타난 미노안, 미케네안, 유테인, 팔래스티안, 페니키안들의 문화도 동남아세아에서 서남아세아와 지중해로 전해지는 문화와 문명의 줄기다. 동아세아의 유목문화는 중앙아세아를 거쳐서 동유럽에 시씨안 문화로 연결되어 커다란 고분들을 만들었음을 볼 수 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문화가 있기 전에 상나라를 비롯한 동아세아에 여러 나라의 문화가 있고 그리스의 알렉산더대왕이 서남아세아를 정복하는 능력도 주나라를 비롯한 동아세아의 유목국가들이 이미 동아세아에서 동유럽에 거치는 지금의 소련영토와 중국영토를 지배하는 능력에서 그리스에 전해진 문명의 한부분이다.

그때 동아세아 유목국가의 건축양식에 궁전 앞에 삽살개 조각을 세우는 모습이 있었고 그 이후에 알렉산더 대왕의 사자조각을 수호신으로 문 앞에 세우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에 로마제국이 본받고 유럽에 제국이 되었다. 한나라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렀을 때 수도 장안성은 세계의 문화 중심지가 되고 로마인들은 처음으로 비단옷을 중국의 상인들에게서 사서 입었다. 그때부터 아세아 유목민들이 왕래하던 비단길이 유럽에 알려졌지만 동아세아에 유목민들은 오래전부터 왕래하면서 아세아인들이 동유럽으로 이주해가고 있었고 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이 유럽에 전해지고 있었다. 이때 동아세아에 제국들은 이미 수천 킬로미터에 연결되는 군사용 고속도로 만리장성이 초원과 농원을 가르며 한반도에서 몽골을 연결하는 큰길로 만들어 있었고 황하와 양자강을 연결하는 대운하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그 규모와 기술면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수십 배를 능가하는 인류문명의 거작들이다.

동아세아에 해안국가들과 유목국가들의 인구팽창은 파도처럼 남아세아와 중앙아세아로 그 충격이 전해지고 남아세아국가들과 중앙아세아국가들은 서남아세아와 동유럽으로 이주해 들어가면서 그 충격의 여파를 전하였다. 시씨안들이 그리스로, 셀틱스들이 로마로, 가올과 게르만들이 중부유럽에, 북유럽에 싹슨들이 영국 섬나라로, 피노키안들이 아세아남해안에서 지중해연안 일대에, 수많은 국가와 민족들이 유럽으로 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을 전하면서 이주해 들어갔다. 그중에 가장 큰 충격은 아틸라장군이 이끄는 몽골 훈족의 침략으로 로마의 역사를 종결시켰다.

중앙아세아 유목민들이 인도의 동부에 간지스강과 서부에 인더스강유역을 통하여 북인도 일대로 이주해 들어가 원주민 드라비디안들을 정복하고 동화되기도하고 남쪽으로 축출하는 현상은 4천년전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온대지방에 선진문화와 문명이 열대지방에 후진민족지역으로 이주해 들어가는 현상이며 아프리카 나일강 유역에도 동아세아인들이 아랍인들과 흑인들을 점령해 들어갔다. 이때 동아세아에도 내륙 유목민들이 해안농경국가들을 침략해 들어가는 동안 이들 해안국가들은 세계에 여러 대륙의 해안지대로 분산되었고 동아세아의 문화와 문명도 세계적으로 분포되었다. 동아세아에서 동인도에 들어온 금속문명은 석굴조각문화로 발달하였다. 동아세아의 금속문화, 용의종교, 인도의 조각 문화등은 그 후에 서남아세아에 페르시아 문화를 이르켰다.

동아세아에 도시국가들과 제후국들이 사회조직을 형성하는 중에 조직적인 종교의식이 결성되었다. 자연의 신비와 위력을 인식하면서 자연종교가 나타나서 도교가 시작되었다. 해를 숭배하는 종교는 농경의 기후에 연관된 천체종교로 발달되어 도교의 큰 내용을 차지하고 달과 해를 비교하여 음양사상이 형성됨은 인류의 지능이 일원론 사고방식에서 이원론 사고방식으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준다. 가족과 사별할 때 매장이나 화장을 하던 의식은 조상의 묘에 제사하고 씨족사회에 질서를 세우던 윤리가 결성되고 유교의 기반이 되었다. 도교와 유교를 기반으로 철학이 시작되고 유학이 발달함은 문자의 정립과 함께 문화에서 문명이 진화하는 인류성장의 과도기로 동아세아의 상나라와 주나라 때 경쟁사회안에 극성기를 이루었다.

2600년전에 동아세아의 제국사회조직이 동인도를 통하여 인도에 전해질 무렵에 씨족사회에서 시작된 도교와 유교는 제국사회에 적응하는 제국종교인 불교로 중국과 인도사이에 간지스강에서 나타났다. 인도의 조각예술과 함께 중국동해안에 분포되어 북위의 운강석굴로 불교문화가 동아세아에 꽃을 피운다. 인도의 서쪽에 인더스강 유역의 굽타국은 불교국가가 되고 지중해연안에 그리스왕들은 인도와 중국의 불교사찰에 와서 불교승려가 되어 동남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을 배우고 수련하였다. 그때 배워간 음양사상은 후에 플래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양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동아세아의 달과 해의 종교는 중미의 아즈텤문화에 달피라미드와 해피라미드에서도 볼 수 있다. 공자, 맹자, 석가가 태어난 이후에 600백년이 지나서 서남아세아에 예수가 태어나고 불교를 바탕으로하는 기독교가 시작된다. 천주교양식이 불교양식과 공통성이 많고 동유럽에 분포되었다. 그런 후에 600년이 지나서 기독교의 구약을 바탕으로 하는 회교도가 나타난다. 12세기에 몽골인들이 중세기의 유럽국가들을 점령하고 동아세아의 문화를 다시 전해준 이후에 서유럽에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개신교가 나타난다.

세계의 종교가 동아세아의 도교에서 시작하여 서유럽의 개신교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시간을 거쳐 동아세아 문화의 파도가 서유럽에 이르렀다. 종교역사를 통하여서도 세계문화와 문명이 동아세아에서 시작하여 유라세아대륙을 횡단하여 서유럽에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한반도에 도교문화는 고구려 문화에 뿌리가 깊고 고구려고분에 많은 유적을 남기었다. 불교문화는 백제가 동성왕 때 산서성에 북위를 점령하고 북위는 불교사찰 운강석굴 작업을 중단하고 황하남부 낙양에 용문석굴로 옮겼다. 이 무렵(494년)에 북위의 불교문화는 한반도 남단 백제에 전해지고 후에 신라와 일본에 전해졌다.

유럽에 고전문화는 로마가 몽골훈족에게 침략을 당하면서 종식되고 유럽국가들이 중세암흑기에 머무는 동안에 인류의 아동기성장은 동아세아에서 계속된다. 양자강 중원에서 성장한 중국한족은 주나라를 뒤따라 동해안에 해안국가들과 융합하여 한나라 제국을 세워 동남아세아를 장악한다. 한나라 문화와 문명은 동아세아 문화와 문명의 결집이 되었다. 진시황제가 주나라를 이어 통일제국을 세울 무렵에 요동지방에 유목국가중에 하나인 예치족은 간지스강유역에 이주하여 쿠샨국을 세우고 팽창하여 북부인도 대부분과 동유럽에 카스피해까지 이르는 영토를 확보하는 대쿠샨제국을 건설하였다.

후에 중국의 당나라와 그리고 유럽의 로마와 교역하여 인도에 불교문화의 절정을 이루고 인도역사에 통일제국역사가 시작된다. 동아세아의 금속기구는 인도의 조각예술을 부흥시키고 인도의 조각예술은 페네키안들에 의해서 그리스에 전해저서 그리스의 조각예술이 발달되었다. 인도의 쿠샨제국시대에 불교예술이 극치에 달하고 로마국이 개발한 통로를 통하여 쿠샨국의 불교조각미술은 아프리카와 홍해연안에 석굴조각으로 연장되었다. 동아세아인들에 의해서 세워진 인도의 쿠샨제국은 지중해와 동아세아를 연결하는 계기가 되고 인류아동기 문화의 절정이 시작된다.

동아세아의 세력은 이미 하나라와 상나라 때에 세계에 분출되어 요동반도에서 시작된 적석총(피라미드)을 중미와 남아메리카의 태평양해변에 그리고 아프리카 나일강 하구에 전하였다. 세계로 연결되는 교통망은 중국의 당나라 때 이르러 당나라의 장안(서안)을 중심으로 세계제국이 건설되었다. 이때 한반도에는 통일신라의 불교문화가 극치에 이르고 백제가 신라에 쫓길 무렵에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아소까문화를 이르킨다. 당나라세력에서 도피한 몽골훈족은 로마를 점령하고 같은 때에 인도에 드러가 쿠샨제국을 침공한다. 몽골훈족의 동아세아문화와 전쟁문명은 동유럽에 전해지고 그들중에 북유럽으로 이주하여 바이킹 해적이 되었다. 그들은 영국과 유럽의 해안을 300년동안 공략하고 영국,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에 정착하였다.

당나라의 문화는 한나라의 문화와 크게 대조된다. 한나라문화는 해안국가들의 문화에서 시작하여 유목국가와 융합된 동아세아문화의 결집이다. 당나라문화는 동아세아문화가 동인도를 통하여 인도에 진출한 이후에 그리고 서남아세아와 지중해를 통하여 유럽에 지출한 이후에 유라세아 대륙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대륙에 연결되는 세계대제국의 문화와 문명이었다. 당나라가 300년을 집권한후에 동아세아는 북에는 만주족이 지배하는 금나라, 그리고 남에는 송나라 양자강 문화가 성장하였다. 북에서 금나라와 경쟁을해오던 몽골국은 만주지역과 티벳트지역에 같은 혈연의 민족들을 통합하여 드디어 동아세아 세력이 세계를 정복하는 역사에 나선다.

훈족으로 결성된 흉노제국은 로마와 유럽을 정복하고 동유럽에서 동아세아를 거치는 유목지대를 지배하면서 한나라와 경쟁하였다. 7세기경에 우이거제국을 건설하여 당나라와 경쟁을 펼쳤고 서기1167에 태어난 칭기즈 칸이 다시 유목민들을 통합하여 인류역사에 가장큰 변화를 갖어오는 유라시아대륙을 통합하는 제국을 세었다. 유럽중세기에 암흑시기를 지내는 유럽인들이 다시 잊었던 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을 배우게 되는 기회를 가져왔다. 그때부터 세계에 현대문명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아동기에 자연환경에서 자립하여 자신의 의식과 의지에 따라 성장함은 부모에 의지하는 인류의 본능이 자신의 자립적 본능과 절충하는 시기였다. 자연과 종교에 의지하는 본능에서 지성적인 본능이 성장하였다. 씨족사회, 부락사회, 지역사회, 도시국가, 제후국가, 제국으로 성장하는 진화과정이 동남아세아에서 시작하여 동아세아에서 이루어졌다. 동으로 미대륙에, 서로 중앙아세아, 동유럽으로, 남으로 인도, 서남아세아, 지중해연안, 서유럽으로 전해저가는 과정이 아동기의 인류성장이며 동아세아의 유목민들이 농경문화와 융화되어 세계를 통일하는 과정이었다.

인류가 지구상에 생명체의 모습으로 생존해오다가 드디어 2백만년전에 포유류 (어머니의 젖을 먹는 종류) 직립형 (일어선 모습) 고등생물, 호모에렉터스, 구석기인의 원조가 아프리카에 나타났다. 이들의 화석유적은 북남미대륙을 제외한 세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이 기간을 인류의 잉태기라고 생각하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단새포 정자를 받고 음부 안에서 진화하여 드디어 아기의 모습이 나타나는 과정과 유사하기에 지구는 어머니의 생리를 구비하였다. 놀랍게도 이들 구석기인들은 나무와 돌을 생활용구로 사용하였고 불을 피워 동굴안을 덥히고 음식을 익혀먹었다.

최근에 발표된 유전학의 인류혈연추적에 의하면 지구상에 살고있느 현대인류는 1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이때부터 인류의 역사는 한사람의 유아기에 모습으로 시작된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어머니 품에서 자라듯이 지구상에 생산되는 자연음식이 풍부하고 기후가 안이한 자연환경이 구비된 장소를 찾아 서식하기 시작하였다. 아프리카대륙의 남부와 서부로 인구가 증가되다가 드디어 아세아대륙남부에 이주해 나갔다. 이때 지중해연안을 제외한 유럽은 빙하기의 얼음으로 덥혀있었고 그상태는 최근 일만 이천 년 전까지 지속되었다.

현대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서 동남아세아와 오스트랄리아에 도착하였을 때는 5만년전이며 아프리카와 기후가 유사하고 음식이 풍부한 동남아세아 지역은 인류유아기에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그때 인도네시아 섬들은 커다란 하나의 반도(선다랜드)였으며 월남, 캄보디아, 타일랜드로 연결된 동남아세아 대륙의 한 부분이었다. 동남아세아에서 씨족사회가 성장하면서 유아기의 언어가 시작되고 지능이 성장하여 활동력과 활동지역이 확대되면서 인류는 아동기로 성장한다.

어머니의 젖에 의존하는 자연식물 채집생활에서 씨를 모아 심어서 길러먹는 농경생활로 변하는 과정은 어머니의 젖을 때고 유아기의 인류에서 아동기의 인류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동남아세아의 기후와 자연조건은 인류의 인구증가에 적합한 보금자리였다. 동남아세아를 떠난 많은 민족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멸하였지만 동남아세아는 계속해서 인구를 증가하여 세계 각지역에 물이 풍부한 장소에 씨족사회가 안정되도록 인구를 보급하였다.

3만 5천 년전 동남아세아에 아동기 인류는 해안선 따라 아세아남부와 아세아동부로 나누어지며 이때 세계인류는 두부류로 나누어져 성장하였다. 타일랜드, 마이얀마, 인디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서유럽으로 진출한 남방계 인류혈연이있고 월남, 동중국, 한국, 일본, 동러시아, 북미대륙, 남미대륙으로 연결되고 몽골, 티벳트로 연결되어 동유럽까지 연장되는 북방계 인류혈연이 있다. 동남아세아 언어의 시작은 남방계 인류의 오스트로네시안과 북방계 인류의 오스트로에시아틱으로 나누어진다. 언어학자 조하나 니콜스는 언어속에 “주어 동사 수식어”,과 “주어 수식어 동사”의 두가지정리된 언어형식에 무질서하고 정리되지 못한 언어형식을 포함하여 세가지 언어의 역사적 연관성을 설명하였다. 그녀는 세계 언어의 근원이 동남아세아에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아동기의 인류는 왕성한 활동력과 강한 호기심으로 탐험을 좋아하여 지구상에 인류분포는 이때 가장 빠르게 확장되었다. 내륙으로 진출한 남방계인류와 북방계인류는 중앙아세아에서 혼합되었다. 이때부터 인류의 체질은 주위 환경에 적응하여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프리카에서 검은 피부로 시작한 인류는 동남아세아에 머무는 동안 붉은색(미대륙 원주민 피부색)으로 변하였다가 북으로 떠난 북방계 민족들은 동아세아의 사계절을 격는 동안 피부가 하얗게 변하고 눈과 코가 작아지기 시작 하였다. 서쪽으로 이동한 남방계 민족들 중에 서남아세아에 건조한 기후에 접하여 코가 커지고 유럽의 빙하대륙 해변에 이주해 들어간 민족은 지하거주 생활에 익숙하여 피부가 하얗게 되고 머리털이 노랗게 눈이 파랗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동남아세아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한 인류는 아동의 체구가 성장하듯이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닭, 돼지, 오리, 개, 양, 염소, 등을 길러 체식과 육식을 하고 소를 길러 노동력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음식 찾아 이동하던 생활에서 음식을 생산하는 정착생활로 변화되었다. 소유개념이 성립하여 가족 친척인구와 토지와 재산을 확보하는 씨족사회가 발달하였다. 생신, 결혼, 제사, 등의 종교의식이 인류생활에 문화형태로 나타났다. 아동의 정서가 성장하듯이 동남아세아에서 제일 먼저 인류의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아세아의 기후는 인류의 안이한 생활을 보장하였지만 온대지방 민족 중에 동아세아 해변 따라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에 도착한 대한민족은 3만 5천 년 전부터 내륙으로 침투하여 만주, 몽골, 티베트에 이르는 유목민으로 성장하였다. 양자강, 황하, 한반도에 여러 강 하구에 농경생활로 정착하고 신석기시대 현대인류 중에 가장먼저 사계절에 적응하고 유목과 농경을 겸비한 경쟁 속에 단련된 생활을 시작하였다. 동남아세아에서 계속해서 이주해온 해안민족들은 한반도를 지나서 북남미 태평양 연안으로 이주해 나가고 서해주변의 강 유역에서 강을 따라 내륙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내륙민이 되었다.

산동, 요동, 한반도는 신석기시대 인류역사에 가장 분주한 교통요지가 되었기에 방죽을 파서 못을 만들어 물을 모으고 산(마운드)과 고분을 지어 제사를 지내던 흙의 문화와 큰 돌을 멀리서 끌어다가 신전을 세우는 고인돌 문화가 세계에 어느 곳보다도 이곳에 가장 많이 밀집되어있다. 인류가 성장하는 아동기에 그림 그리기를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듯 지칠 줄 모르고 뛰어놀기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 뭐든지 보고 만지고 알고 싶어 했다.

그럴수록 지성은 빠르게 성장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젔고 묻고 싶은 의문도 많았기에 이웃과 대화는 활발해져서 인류의 부락사회가 빠르게 도시국가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곳에서 씨족들 사이에 경쟁은 더 큰 씨족사회를 만들어 국가의 형태가 되고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경쟁은 제국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류가 어린아동에서 십대아동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동아세아에서 지식이 발달하는 때부터 시작하였다. 경쟁사회의 상징으로 만리장성이 만들어짐도 이곳에서 시작하여 내륙으로 성장하였다.

세계문화는 동남아세아의 채집농경생활에 모계사회에서 시작되었고 세계문명은 동아세아 농경유목민들의 금속기 생활에 익숙해진 경쟁사회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본능은 음식을 찾아먹는 능력과 남녀가 교제하여 자식을 낳아서 기르는 능력으로 이루어졌기에 사랑은 문화의 근원이 되었고 생존경쟁은 문명의 근원이 되었다. 해안민족들이 삼나무를 빚어 옷감을 만들어 입다가 누에 벌래에서 비단옷을 만들어 입는 동안에 유목민들은 짐승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양과 개, 그리고 말을 길렀다. 그 지역의 지하자원 중에 석탄은 금속을 대량생산하는 능력을 갖게 하고 여러 가지 금속기술과 재품들은 생활도구와 군사무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세계문명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사계절에 적응하는 생활은 겨울이 오기 전에 음식, 옷, 집, 연료 등의 필수품을 준비하는 규칙적인 노력과 단련을 갖추었다. 금속연장으로 큰집을 짓고 큰 배를 만들고 금속 축을 넣은 바퀴는 빠르게 멀리 달리는 전차(chariot)를 대량생산하기에 이르렀다. 큰 짐을 나르는 마차를 만들어 운송 산업과 함께 모든 산업이 부흥하였다. 자석을 발견하고 철침 나침판을 발명하여 원양항해가 발달하였으며 종이를 만들어 문자기록이 활발하여 정보교환과 기록연결은 장소과 시간의 재한을 초월하였다. 수 만년을 일찍부터 많은 인구가 넓고 큰 대륙에 생활하는 동안에 고대사회의 모든 발명과 발견들은 동아세아의 경쟁사회에 적용되었다.

흙산(마운드)을 짓는 문화와 큰돌을 옮겨와 고인돌을 세우는 문화가 결합하여 압록강유역에서 적석총(피라미드)을 세우는 관습과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집트 나일강 하구에서 돌연변이로 나타난 피라밑 문화도 그리고 남미대륙 태평양연안에 세워진 층단식 피라미드들도 그들의 뿌리가 압록강유역에서 진화된 신석기시대의 문화에 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동아세아 문화가 인더스강 유역과 메소포타미아로 전해지고, 최근 일만 년 전 이후에 지중해연안으로 전해져서 그리스의 미노안 문화가 시작되었다. 동아세아 주나라 문화의 연장으로 동인도의 불교문화와 지중해에 그리스문화가 성립하고 동주와 춘추전국시대의 여파로 로마국이 건립되어 동아세아의 한나라, 당나라와 함께 유럽의 나라들이 성장하였다.

동남아세아의 원시자연종교는 동아세아의 음양사상과 천체종교인 도교, 조상숭배의 유학, 그리고 동인도의 흰두교로 수 천 년의 기반을 조성해왔다. 제국주의종교가 동인도에서 결성되고 서인도에 전해져서 지중해의 그리스 왕들이 인도와 동아세아의 불교사찰에 찾아와서 불교승려로 수련하고 아세아의 철학과 문화를 배워갔다.(인도와 중국의 불교기록). 600년 후에 기독교가 탄생하였기에 초기기독교인 천주교와 불교는 공통성이 많다. 유태교는 구약의 종교이며 다시 600년 후에 구약에서 회교도가 시작됨도 세계종교의 뿌리가 황하와 갠지스강 유역에 있음을 보여준다.

동아세아의 훈족들이 중앙아세아, 인도의 굽타제국과 유럽의 로마에 침략해 들어가서 유럽은 중세 암흑기에 잠기고 동아세아는 수나라와 송나라 문화로 계속해서 성장하였다. 서남아세아는 페르시아에서 비잔친으로 동남아세아에는 캄보디아에 크머르제국이 성장하면서 세계 인류는 십대 소년소녀의 지성과 감성을 갖추어갔다. 그러다가 12세기에 동아세아 북방유목민들이 훈족선조들이 이루었던 세계침략을 다시 재연하면서 인류는 사춘기에 든다.

몽골제국의 세계통일은 인류의 성장기 중에 십대 소년소녀의 사춘기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기간의 특성은 마치 소년과 소녀가 처음 보는 이성에 매력을 느끼듯이 아세아가 유럽을 비롯한 아프리카등의 다른 대륙에 인구지역을 보고 매력을 느끼고 유럽은 처음으로 아세아를 보고 매력을 갖는 때였다. 사춘기에 변화는 육체적으로나 감성적인 면에서 가장 격렬한 변화의 기간이다. 몽골역사는 세계역사의 그러한 부분과 개성을 보여준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집권하여 34년 동안 서남아세아와 유럽에 영토를 더욱 확장하고 모든 피침략국으로부터 조공을 바치게 하여 국호를 원나라로 칭하였다. 수도를 대도(북경)으로 천도하여 자금성을 증축하고 당나라 때 장안(서안)에서 누리던 세계의 수도를 다시 세우고 세계문화와 문명의 중심지를 베이징 지역에서 다시 이루었다. 유럽 국가들이 조공을 바치고 세계 각 대륙에서 상인들이 왕래하였다. 그 들 중에 로마교황의 서신을 가지고 찾아온 말코폴로 부자는 쿠빌라이 칸의 신하로 일하고 모국을 왕래하면서 동아세아의 문화와 문명을 서유럽에 소개하였다.

동아세아에는 옷감을 솜, 누에 실, 양털로 짜서 입고 종이와 목판인쇄가 발달하여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였다. 해양산업이 왕성하고 세계지형을 탐험하여 항로를 개발하여 대륙들과 섬나라에서 조공을 받았고 말코폴로가 스리랑카에 방문하여 몽골의 세금을 받아 왔다. 그 후에 명나라 때 세계 항해지도를 작성하여 나침판과 함께 동아세아 항해기술이 유럽에 분포되는 결과를 가져와 서유럽에 해양산업이 촉구되었다.

몽골 군사들은 화약 폭팔로 대포를 개발하여 유럽에 전해졌고 전쟁역사에 혁명을 가져왔다. 목판인쇄와 후에 한국에서 개발된 금속활자인쇄는 동아세아에서 오래 동안 문화와 문명을 개발하는 능력이었다. 이때 서유럽에 전해진 출판기술은 유럽에 문예부흥을 가져오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교개혁,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고 인본주의 사상은 제국주의를 축출하여 민주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주의 경제가 시작된다. 서유럽이 주동이 되어 동유럽의 천주교에서 벗어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사회종교, 개신교가 시작된다.

그동안 몽골의 침략을 받았던 중앙아세아 중국한족이 다시 회복하여 명나라를 세웠다. 명나라는 원나라 문화를 계승하고 퇴폐된 모든 정부정책과 설비를 재정비 하였다. 영국의 해군탐험가 개빈 맨지스는 그의 저서 “1421”에 명나라 해군재독 정허가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고 사용한 세계원정의 함선 크기가 151m 길이에 61m폭의 대형선박이며 200여척의 수행선박들에 2만 7천여 명의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1405년에 장수성에 태창을 떠나 인도와 아프리카를 거쳐 1421년에 미 대륙에 도착하였다고 설명하였다. 귀국한 후에도 계속하여 1433년에 7번째 원정을 마치고 항해지도를 마들었다고 한다. 1525년에 명나라는 모든 해양산업을 폐쇄하고 쇄국정책을 세웠다. 이들 항해정보는 유럽에 전파되고 이때 동아세아는 세계패권을 유럽에 넘겨주고 동아세아의 쇠락으로 가는 현대역사가 시작되었다.
1
493년에 폴튜갈 항해사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북미대륙에 이르고 1598년에 바스코 다가마는 아프리카를 지나서 인도에 도착하여 유럽은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동아세아에 국가 간의 경쟁사회는 이제 유럽으로 전해저서 유럽에 치열한 내전과 정치 사회 경제에 개혁이 계속된다. 경쟁사회에는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전문분야가 발달하고 교육산업 교역금융이 급성장하여 해외로 진출하게 된다. 1650년에는 스페인, 영국, 홀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등의 나라에서 탐험대와 교역선박들이 북미, 중미, 남미, 아프리카, 인도, 중국, 동남아세아에 여러 섬나라에 왕래하였다. 아세아의 비단, 자기그릇, 털옷, 여러 귀금속들이 유럽에 수입되었고 밭에서 농부가 소에게 끌어 흙을파는 쟁기와 야채 과일 곡식 씨들이 들어와 유럽에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세계의 지식이 유럽에 집중되어 과학과 발명이 성행하고 방직, 운송, 군사무기, 등의 산업이 발달하고 북미동해안에 13식민지 지역을 나누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는 대륙을 나누어 소유권을 사고팔았다. 드디어 미국에 이민 온 유럽인들은 미국정부를 수립하고 1775년에 조지 워싱톤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영국은 인도, 오스트라리아, 뉴질랜드를 식민지화하고 세계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일대를 소유하는 국토확장 했고 유럽과 세계지도의 모양이 크게 변하였다. 농업지역 확장으로 노동력이 필요한 지역에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하여 노예로 파는 사업이 성행하였다.

수만 년 동안 주거해온 원주민들은 무자비하게 학살되고 그들의 생활지역에서 축출되고 주민들은 재한된 지역에 감금되어 인류역사에 가장 큰 비극으로 유럽백인들의 토지확장의 희생물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의 성장에 사춘기에 겪는 과격한 변화 현상이었으며 17세기에 들어 세계인구의 급성장은 사춘기의 육체적 성장을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북미대륙에 남북전쟁은 의욕과 양심의 대립이었다. 북군이 승리하고 노예제도는 중단되었다. 에디슨은 전기를 발견하고 전기통신과 전기기계 동력은 증기기관차의 철로연결과 함께 세계가 완전한 성장된 인류 성인의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사춘기 인류의 성장은 계속되고 일차와 이차 대전의 폭력도 보이는 현상이 있었다. 포드는 자동차를 발명하고 기름을 태워 움직이는 자동차는 고속도로로 대륙을 횡단하였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대량생산은 자본주의 경제에 빈부격차가 나타나고 그에 대조되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나타났다. 유럽의 국토확장 의식은 이태리에서 유럽 내에 일차대전으로 시작하였다가 미국과 프랑스의 재재로 멈추었다. 1939년에 다시 세계 이차대전이 시작하였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쇄국정치하는 동안에 60년을 앞서서 현대화하였고 한국과 중국만주를 점령하여 식민지화에 성공하였다. 동남아세아에 확창하려는 의도로 일본은 독일의 이차대전에 가담하고 하와이를 공격하고 미국에 도전하였다.

압록강 상류 백두산에서 태어난 누루하치는 만주지역에 청나라를 세우고 1644년에 명나라를 침공하여 중국한족의 주도권을 북쪽에 흉노 몽골이 빼앗았던 일을 이번에는 동이족 만주한반도계 민족이 다시 반복하였다. 한반도에 신라가 고려의 침략을 받고 신라의 왕족들이 옛 고구려 영토에 세운 금나리가 북송을 멸망시켰다.그 후에 몽골 칭기즈 칸은 금나라를 제일먼저 몽골제국에 연합시켰었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에 국경주위와 내국에 반란은 다시 계속되었고 일본왜족은 한반도에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계속해서 청나라 해안지대를 괴롭혔다. 명나라 때 세운 쇄국정책은 청나라 때 계속되고 동아세아의 세계로 연결되었던 오랜 역사는 여기서 끝났다.

현대와 미래의 세계

사는 것은 이 넓은 세상에 모든 생물에게 주어져서 이 땅에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였으며 느끼는 것은 제한된 고등동물들에게만 주어져서 지구역사의 최근에 존재하였다. 생각 하는 것은 극히 한정된 인간에게만 주어져서 현대 인류의 가장 짧은 역사에만 존재하였다.

인류역사를 크게 나누면 종교생활기간이 가장 길게 존속하였고 예술문화기간이 그 다음에 존속되어 오다가 과학문명이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 된 인류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야하며 우리들의 자손들을 위해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꾸며가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종교와 예술과 과학과 함께 살아왔다. 삼백오십억(3,500 million) 년을 거쳐 이루어진 이 땅에
생명의 섭리는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의 물질만능 생활의 근시에 최근 이 백 년 동안에 자연의 파괴는 막심한 듯하다.

우리가 할 일은 자연이 창조한 자연환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자연의 순리를 이행하는 일이다. 우리의 목숨이 귀한 것만큼 우리후손들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고 미래인류의 생활환경에 크게 관심을 갖게 함이 당연하다.

자연환경 안에 모든 생물들이 인류와 함께 건강하게 살도록 우리의 생활을 관리함은 미래의 인류를 위해서다. 세계에 모든 국가들의 정부가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세워 평화를 유지하며 수행해야하는 임무다. 십만 년 전에 현대인류가 아프리카에 나타난 후에 이 세상에 다른 원시인들이 사라졌듯이 이 땅에 우주인들이 탄생하는 때면 현대인류는 차츰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 때까지 현대인류는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함이 최선의 길이다.

세계역사에 14세기까지 앞서오던 동양의 평화적 정신문화를 다시 정립하여, 사는 것,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들의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한 세계를 다시 세운다. 아세아 인들이 원래 인류문화와 문명의 주역 이였음을 입증하고 유럽인들이 만든 물질만능 사상을 교정해야한다. 지금부터 세계는 인류문화에 새로운 아세아 인들의 세계 환경을 위한 역할을 크게 관망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이 확장을 시도했던 세계이차대전은 1945년에 종말을 지었고 인류의 성숙한 사춘기는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 대영제국이 종식되고 미국이 자본주의 자유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강국으로 나타나고 소련은 사회주의 공산당을 앞세워 동유럽에 여러 나라를 포함한 제국주의 체제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넓은 대지에 자원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미국에 맞서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라이트 두형제가 시작한 항공기술이 세계대전 중에 급격히 발달하였다. 같은 도시 데이튼에 계산기회사에서 시작한 독일과 일본의 전쟁통신기호를 풀이하려 시작한 콤퓨터 기술은 아이비엠회사로 이전되어 세계적 정보저장과 분배에 혁명을 가져왔다. 소련의 제국주의 공산당 경제는 붕괴되었지만 중국의 공산당체제는 자본주의에 개방하여 일본과 한국을 이어 세계의 자유 시장경제에 가담하였다.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경제체제에 가담하여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막강한중에 구제연합기구가 미국 내에 국제도시 뉴욕에 설립되었다. 미국은 개신교를 앞세워 세계에 포교하고 가장 많은 자동차를 갖고 중고업과 경공업에 필요한 중유와 경유를 회교도 국가들에서 수입해오는 중에 부유해진 회교도 국가들의 저항을 받게 되었다.

인류의 성숙한 사춘기 개성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인류가 지구상에 탄생한 이래 신에 의지하고 종교에 부모처럼 집착해오다가 이즈음에 들어 “신은 죽었다”고 외치고 나와 부모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받은 영성이 있기에 종교는 인류 생활에 끝까지 함께 갈 것이다. 현대인의 건전한 생활은 영성 감성 지성을 겸비하였을 때 이루어진다. 지금처럼 과학과 종교를 혼돈하여 세계적 혼란을 초래함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성 감성 지성에 관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인류는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는 능력을 가징 것이다. 예를 들면 종교적 창조론도 인정하고 과학적 진화론도 받아드려 혼돈하는 어리석음은 사라질 것이다.

의학이 발달하여 생명이 연장되고 우주항공이 발달하여 우주인이 달에 도착하였으며 인간의 생활권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혈액연구와 체외임신기술이 발달하여 개조인간으로 새로운 우주인을 잉태하고 산출하게 되는 가능성은 성숙한 사춘기의 출산능력을 보여준다. 인공위성을 쏘아 인간을 우주의 공간에 투입하는 현상은 남성이 성기에서 정자를 분출하는 현상과 비유된다.

유럽과 미국이 독자적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듯하다가 동남아세아와 교섭하는 현상은 남녀가 데이트하는 느낌을 준다. 시간은 더욱 빨라져서 사춘기의 기간이 모21세기에 들어 인류의 생활은 급격히 진전하고 있다.

우주인을 출산하고 기르는 인류 가정생활에 진입하게 되고 지구상에 인류생활에 가장 행복한 기간을 가져올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세계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아이들의 학교와 젊은이의 직장에 오가는 교통이 적어지고 노인들의 나이가 연장되어 노인 인구가 팽창하게 된다. 노인의 생산성이 증가하는 사회이며 교통이 발달하여 세계의 어느 곳이던 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성경에 400여 번이나 나타나는 7숫자는 동아세아 신석기시대의 천체종교에 북극성을 받드는 천궁을 믿어서 북두칠성에서 시작하여 음양과 오행을 합한 숫자로 일월화수목금토의 천지가 완성되는 숫자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지중해의 석조건축이 있기 이전에 목조건축과 석굴 조각이 있었고 석조 피라미드가 세워지기 이전에 흙으로 지은 피라미드(mound)와 작은 돌을 끌어와 고인돌 신전(dolmen temple)이 있었음을 이해함은 현대인의 상식이다. 목조건축과 석굴조각의 시작과 그 유물이 동남아세아에 있고 흙으로 지은 피라미드와 고인돌 신전이 한반도 주위의 동아세아에 있음을 보면 그 유래가 아세아에서 시작되어 지중해에 전해졌음이 선명해진다. 그리스의 왕들이 중국과 인도를 찾아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아세아 종교와 문화를 배워가서 지중해 종교와 문화가 부흥하게 되었음은 중국과 인도의 역사기록을 보면 서남아세아의 지중해 문화는 동남아세아의 후손임을 이해가게 된다. 마치 일본의 문화가 한반도에서 이전된 사실을 감추려는 정치적 조작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동아세아의 요하문명은 중국의 황하문명이 뒤를 따른 세계에서 가장 일찍 발달한 문화와 문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진시황제가 제국을 세워 유럽의 로마제국이 뒤를 따랐듯이 피라미드 문화도 이곳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피라미드가 뒤를 따랐다. 과거에 인류는 유아기에 어머니의 젖을 먹으며 자라 듯 자연과 신에 의존하여 살았고 아동기에 훈족과 몽골 그리고 바이킹처럼 초원을 뛰어다니고 해적노리를 하며 자랐다. 현대의 사춘기 인류는 사춘기에 육체가 발육하듯 인구는 급성장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계속해서 성숙하여 홀로 서기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현대 인류의 현대 역사는 동아세아의 칭기스칸이 유럽을 정복하고 동아세아 문화를 유럽에 전해주면서 시작하였다. 현대 인류 역사는 총을 든 유럽인이 활을 쏘는 아세아인의 영토를 빼앗고 2개의 세계 대전을 겪었다. 아세아인의 대륙에 유럽인이 세운 새로운 국가 미국은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능력이 부족하여 600만 유태인의 학살을 막지 못했고 지금도 2,000만의 북한 인민을 김씨 가족의 독제에서 구하지 못하고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혼동하며 자신의 종교를 위하여 남의 종교 교인을 학살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대인 지식의 혼동은 인류의 미숙한 모습이며 종교에서 오는 세계적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지금은 이성, 감성, 영성을 분리하지 못하고 혼돈하고 있지만, 조금 더 성숙하여 과학, 예술, 종교의 언어를 분리하고 사고방식도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지금처럼 비참한 종교전쟁은 사라지게 된다. 진화론과 창조론도 공존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이제 동아세아가 주도하는 행복한 가정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고 오행이 시제를 맞추어 생활에 질서가 서고 인류가 하나의 가정이 된다. 지금의 튜브 베이비는 미래의 인류가 되어 우주의 오랜 여행에서 생존하는 능력을 갖게 된 우주인이 태어난다. 미래의 인류는 우주인 자식을 기르는 인류의 청년기 시절을 맞게 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 발굴하여 확인될 내용이 허다하다. 동아세아의 경제적 발전을 바탕으로 학구적 활동이 융성하여 인류의 역사 이해가 더욱 사실적이고 진실된 내용이 전개될 것이다. 그리스의 Plato가 말하여 지금도 유럽인들이 찾고 있는 Atlantis는 동아세아 한반도 주위임을 이해하기에 이를 것이다.

[세계경제 덮치는 4가지 변화의 물결]

① 전세계 GDP 절반가량이 신흥국 440개 도시에서 나올 것
② 기술변화 속도 점차 빨라져 페이스북 사용자 9년새 233배로
③ 인구 노령화, 중국•남미까지 확산… 노동층 압박 커지고 정부 세수 줄어
④ 국가간 이동 100년새 5배로… 세상의 상호연관성 커져
직감에 의존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일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1973년 교육부 장관을 하고 있을 때 "내 생전에 영국에서 여성 총리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IBM의 사장이었던 토머스 J 왓슨은 1943년 "전 세계적으로 컴퓨터 시장 규모는 5대 정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1927년에 유성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워너 브러더스의 해리 워너는 "도대체 누가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느냐"고 말했다.

네 가지 거대한 변화가 글로벌 경제 흐름을 바꾸고 있다. 이 네 가지 새로운 흐름은 사람들이 직관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모습으로 달라지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다.
첫째 거대한 변화는 경제 활동의 중심부가 신흥국 시장의 도시로 옮아간 것이다. 지난 2000년에는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의 95%가 선진국에 본사를 뒀다. 2025년까지는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의 절반가량이 신흥국에 본사를 둘 것이다. 중국에 본사를 두는 기업 숫자가 미국이나 유럽에 본사를 두는 기업보다 많아질 것이다.

신흥국 도시가 선봉에 서서 이런 변화를 이끌고 있다.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절반가량이 신흥국 내 도시 440곳에서 나올 것이다. 베이징의 동남쪽에 있는 톈진의 GDP는 현재 스톡홀름과 같지만 2025년에는 스웨덴 전체의 GDP와 같아질 수 있다.

둘째 거대한 변화는 기술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언제나 변화를 불러왔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된 디지털과 모바일 기술 덕에, 언제 어디서나 기술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게 됐다. 전화는 발명된 지 50년이 지나서야 미국 가정의 절반이 한 대씩 소유하게 됐다. 반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3%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0년이었다. 지난 2006년 600만명이던 페이스북 사용자는 현재 14억명에 이른다.

무선 인터넷은 신흥국 시민 수십억명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경제적 진보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무선 인터넷은 스타트업 기업에 기존 기업과 경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기술적 변화에는 위험이 따른다. 특히 자동화로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고도의 기술 영역에서 일할 기술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기술 변화는) 리스크다.

셋째 변화는 인구통계적인 변화다. 수백년 만에 처음으로 대다수 지역에서 인구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다. 대신 인구 노령화가 진행 중이다. 인구 노령화는 과거 선진국에서 주로 나타났지만, 지금은 중국까지 확산됐다. 곧 남미에서도 인구 노령화가 진행될 것이다.

30년 전에는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율이 2.1명 아래인 국가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인류의 60%는 현 인구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아이를 낳고 있다. 노년층의 비중이 커질수록, 노동층이 받는 압박은 커진다. 아울러 정부의 빚을 갚고, 공공 서비스, 연금 체계를 위해 쓰일 세수도 줄게 된다.

마지막 변화는 국경을 넘나드는 물자, 자본, 사람, 정보로 세상의 상호 연관성(interconnectedness)이 커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국제적인 네트워크는 무역 허브인 유럽과 북아메리카 일대에 주로 존재했다. 현재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는 이보다 더 복잡하고 더 널리 퍼져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 신흥국으로 흘러가는 자본의 규모는 2배가 됐다. 또 2009년에는 10억이 넘는 사람이 국경을 건넜는데, 이는 1908년과 비교해 5배 늘어난 수치다.

이러한 변화로 노동자와 회사는 이미 난관에 봉착했다. 종전에 없었던 혹은 예상치 못한 먼 곳에서 경쟁자가 생겼고, 지역 내 일자리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상호 연관성이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익숙함을 선호하는 노동자 기업, 정부가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특히 기업이 그렇다. 맥킨지 조사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회사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미래나 앞으로 찾아올 기회를 고려하기보다는 과거의 경험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타성에 젖은 기업들은 새로운 경제 흐름을 잘 헤엄쳐 나가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적응에 성공하고, 전례 없는 기회를 잘 이용할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본사를 짓고, 가게를 임대하고, 레스토랑을 사는 등 많은 자본 투입을 요구하는 전통 방식 사업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위성 사무실을 열고, 온라인 가게를 내고, 푸드트럭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흐름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회사는 번창할 것이다.

현재 경제 변화의 속도와 스케일은 매우 위압적이다. 그럼에도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만한 이유는 여럿 있다. 국가 내부의 불평등은 커지고 있을지 몰라도, 국가 간 불평등은 상당히 줄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10억명에 가까운 사람이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났고, 30억명 정도가 앞으로 20년 안에 새로운 중산층에 진입할 것이다.

1930년 대공황이 닥쳤을 때, 케인스는 '진보적인 경제'의 삶의 질은 100년 뒤 4~8배 정도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예측은 당시에 '극단적으로 낙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금 보면 케인스 얘기는 맞았다. 오히려 그가 예측한 것보다 더 삶의 질이 좋아졌다. 당시 다른 경제학자들과 다르게 케인스는 경제를 바꾸는 변화의 힘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이를 다시 한 번 새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