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대륙 원주민의 문화는 동아세아에서 시작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미대륙에 원주민 문화가 유럽에서 건너왔다고 온갖 안간힘을 다해 수년 전까지 주장해왔다, 2010년 경에 인류의 혈연학에 동아세아인의 혈맥이 미대륙 원주민의 혈연임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잠잠해졌다. 동아세아 문화와 미대륙 원주민의 문화 관계는 4만년 동안의 연관을 가진 듯하다.

마야문자들이 중국 한자처럼 하나의 단어로서 의미를 보이고 네모 안에 들어있는 모양이며 좌우로 혹은 상하로 읽는 형식을 보고 기원전 한나라 때 정립된 한자 이전의 모태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상상하였다. 상나라 때 갑골문자와는 다르지만, 주나라 때 주역에서 숫자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점과 직선의 조합되는 한글의 기본형 부분으로 이루어짐은 고통성이 있음을 보았다. 그때부터 지난 30여 년 동안 각국의 국립박물관과 중미 유카탄반도 일대에 올멕, 테오티와칸, 아스텍, 마야 등의 문화 유적지들을 답사하였다. 많은 책과 비디오 자료와 학회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동 아세아의 문화와 미 대륙에 원주민 문화의 공통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처음으로 발표한다.

(1) 동아세아에서 겨울을 준비하면서 시작된 농업은 미대륙의 원주민에도 잘 전해져있다. 맷돌과 절구를 사용하여 곡식을 빻고 껍질을 바람에 날릴 때 키를 사용함도 한반도의 생활 풍습과 같고 도리께 질을 하고 디딜방아도 사용하며 삼나무를 말려 깃저고리를 입고 옷감을 만드는 베틀도 유사하다. 중미지역풍습에 개, 닭, 돼지들을 기르고 먹는다. 우리가 매운 고춧가루 음식을 즐겨먹듯이 그들은 매운 토바스코를 즐겨 먹는다. 긴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고 피리를 즐겨 분다. 한국에 제주도 돌하라방과 비슷한 모자 쓴 인상을 주는 조각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2) 북미 대륙 오대호 일대와 미시시피 강 유역에 수천 개 건립된 봉토(mound)를 세우는 문화는 한반도 남부와 중국 동해안에 봉토 문화와 일맥상통한다. 봉토는 마을에 필요한 저수지를 파고 그 흙을 쌓아 작은 산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만들었다. 저수지의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산 모양의 봉토는 눈여겨볼 수 있다. 한반도 남단에 수백 개의 봉토가 산재해있고 백제와 신라의 고분들도 이들 풍습에 속한다. 마야의 피라미드는 꼭대기에 제사장이 있는 건축양식이다. 후에 적석총은 다른 피라미드처럼 마을 귀족의 분묘가 된 것이다.

(3) 남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 분포된 층단식 피라미드는 만주 지린 성 일대와 서안 외곽을 비롯한 수천 개의 적석총과 같은 양식이며 삼각형 피라미드가 나타나는 과정이 있다. 마야 석조 건축물의 아치는 고구려 고분에서 보는 층단식 지붕(corbel arch)과 같은 양식이다. 마야 석탑에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듯한 높은 층계는 중국의 사찰 입구에 그리고 일본 신도사찰에 남아있는 고대 동아세아의 종교 건축양식과 유사하다.

제단형은 평면적 입면으로 동아세아에서는 아래 시경에서 보여주듯 우리나라 불국사 층계와 다보탑에 축소된 층계도 같은 의미를 보여준다. 유카탄반도에 엘 타진 석탑은 규모와 모양이 백제 미륵사지 석탑을 연상하게 한다. 마야의 석탑은 방추형과 제단형의 2가지가 있는데 동아세아에서는제단형 석탑을 문서에서만 볼 수 있다. 인도의석탑도 같은 형태이며 원래는 동아세아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4) 해와 달 피라미드가 세워진 멕시코 테오티와칸 유적에 건축된 용(dragon)의 모습은 동아세아에 용의 모습과 같고 다만 고기 비늘대신 새 깃으로 몸을 이루었다. 유카탄 반도에 치첸이트사에는 기둥을 감고 도는 용의 모습도 본다. 용의 얼굴, 귀면은 한반도의 백제와 신라건축 지붕기와에서 보는 모습으로 상나라의 청동유물들 조각에서 흔하게 본다. 명나라 때 향로에 조각된 코끼리 코를 가진 귀면을 마야건축물 입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5) 전체 북미대륙에 원주민들이 큰 짐승 사냥하는 데 쓰는 창끝에 기다란 옥돌 날을 클로비스창끝(clovis spear point)이라 부른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쓰인 연장은 수만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생산되었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를 비롯한 동북 아세아 일대에서 큰 짐승을 사냥하는 창끝에 접착한 도구이며 신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사용하던 무기로 북아메리카에 전해진 듯하다. 손잡이 달린 반달 모양 돌칼은 부채 모양과 비슷하여 부채 칼로 불린다. 고기 써는 칼로 아세아 전역에서 볼 수 있으며 북남미 전역에서도 볼 수 있다. 쇠 부채 칼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에스키모 인들을 비롯해 현대인의 생활에도 사용되고 있다.

(6) 음과 양의 종교적 개념과 오행의 개념이 있고 음력, 양력과 같은 두 개의 달력을 사용하며 동아세아의 십이지와 60년 윤회가 있는 것과 같이 13년과 52년 윤회가 있다. 사람을 희생물로 바쳤음은 동아세아 고대 역사에 오랫동안 존재한 순장제도였다. 성전(temple)의 가람배치(site plan)가 남북을 축으로 탑을 중앙에 두고 사방에 문을 두는 형식이 동아세아의 궁궐이나 사찰배치와 유사하다. 이러한 평면계획은 후에 도시계획으로 발전했다. 동아세아의 격자형 도시계획은 마야의 파랑쾨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전쟁에 임하여 높은 장소에 봉화대를 세우고 불을 피우고 검은 연기를 하늘에 올려서 신호하고 북을 쳐서 소리 내어 멀리 신호를 보냄도 동아에아에서 공통으로 보는 현상이다.

(7) 멕시코에 해 피라미드와 달 피라미드가 있고 오행의 상징인 다섯 동물은 뱀, 독수리, 표범, 악어, 두꺼비, 등으로 표시하여 한국 고구려 문화에서 흔히 보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 황인, 등의 오행상징과 상통하는 현상이다.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네하하, 등의 4자 이름이 많다, 한국역사에 을지문덕, 연개소문, 박혁거세, 등의 4자 이름이 많았고 중국 한자의 4자 문체의 습관과 비슷하고 일본은 모두 4자 인명을 쓰고 있다. 마야 인들의 하체의상은 일본 사람의 하의(훈도지)와 같다.

(8) 고대 중국인들이 옥돌을 동전 모양으로 동그랗게 만들고 가운데 동그란 구멍을 만들어 장식물로 몸에 달고 타오티 라고 부르며 잡귀신을 막는다고 한다. 마야 귀족의 의상과 장식에서 타오티를 흔하게 본다. 축제 때 제사 진행자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렸음은 한국에 광대의 습관과 상통한다. 상나라와 부여 왕의 시신을 옥돌 조각으로 몸과 얼굴을 덮었다. 마야왕의 시신을 옥돌 조각으로 몸과 얼굴을 덮었다. 부여의 장례 습관에 따라 부여 임금이 죽으면 옥으로 만든 갑옷인 옥갑을 부장품으로 넣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동아세아의 달력과 마야의 달력이 유사하다.

(9) 멕시코 국립박물관에 사람 모습 조각물 중에 중국 사람들이 흔히 무대 위에서 재주부리는 모습의 조각물이 있다. 명나라 사기그릇이 거래되었음을 전시하였다. 북미 원주민 중에 중국 동전으로 머리를 장식한 풍습을 볼 수 있다. 한반도에는 장대나무에 장승을 조각하여 동네입구에 세웠는데 북미 알라스카를 비롯한 여러 곳에 새와 사람을 조각하여 높게 세우는 토템폴들을 많이 본다. 캐나다 인디언들의 말속에는 지금도 우리말 느낌이 많이 나타난다. 농사용어인 ‘살(쌀)’ ‘이랑’ ‘고랑’ ‘호미’ 쟁기‘등은 우리말과 거의 같다.

(10)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아세아의 항해용 나침반(compass)이 남미 페루 문화에서도 사용되었고 끈을 묶어 마디를 만들어 기록하는 동아세아 풍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잉카제국의 할머니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 ’시집 안간 여자를 무어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체녜‘라고 답하였기에 한국 언어의 ’처녀‘처럼 공통성도 많을 듯하다.

(11) 동아세아 지역에 그리고 한반도에 아기머리를 납작하게 변조시키는 편두습관이 있었다. 그러한 습관이 얼굴과 뒷머리가 납작한 오늘의 후손들을 만드는 결과가 되었는지 모른다. 편두 습관은 중미에서도 있었음을 박물관전시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옛 풍습에 보이듯이 새의 깃으로 장식을 많이 하고 색색이 화려한 옷을 입는 풍습이 있다. 한국의 삼국사기에 기록되었듯이 궁중에서 공차기하였는데 중미에 공차기 행사도 궁중 행사 중에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혈연학자들의 인류분포역사에서 동아세아 민족은 동아세아 해안 일대에 5만년 전경에 정착하였다가 두 길로 나누어 만주, 몽골, 티베트, 동유럽으로 이주해 들어간 내륙민과 그리고 시베리아와 알라스카 해안선 따라 북미와 남미로 이주해간 북남미 원주민으로 나누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혈연의 대동맥이었다.

동아세아 문화와 미대륙 원주민의 문화가 이렇게 가까울 수 있다면 동아세아 문화와 지중해 문화도 수만 년동안 해변길이 열려있었기에 여러 가지 문화와 문명이 연결되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세아와 중미대륙의 연결은 겨울에 기후적 방해가 있지만, 동아세아와 지중해 연결은 겨울철의 방해가 없었기에 훨씬 쉽게 이루어졌다.

지난 100,000년동안 지구상에 기후변화를 보면 10만년전부터 8만년전까지 현재와 같은 더운 기후가 계속되었다가 7만 년 전부터 지구의 기온은 추어져서 유럽대륙, 아세아대륙의 서북편, 그리고 북미대륙에 빙하기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1만 2천 년 전까지 빙하기가 계속되는 동안 바다물의 수위는 100미터에서 300미터가량 낮았기에 지금의 동남아세아 섬나라들,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필립핀, 등은 육로로 연결된 아세아대륙의 한부분이였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필립핀사이에 인도만큼 큰 대륙(Sundaland)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바다밑에 놓인 대륙에 숨켜진 고대동아세아 문화유적은 앞으로 전개되는 해저탐험에 크게 기대된다.

대륙이 바다에 잠기는 과정 중에 문화는 동쪽으로 폴리네시아(Polynesla)에 도피하였고 그중에는 적도선의 해류를 따라 남아메리카에 도착하여 올맥(Olmec) 문화가 시작되고 후에 동아세아 인들이 남미에 이르는 항로개척이 된듯하다. 올맥 문화는 남미에서 시작하여 중미에 나타난 전례 없는 고도의 문화이며 올맥 인들의 얼굴은 잎술이 크고 눈이 크고 넓은 코를 갖인 폴로네시안의 모습이며 하와이 원주민의 모습에 방불하다.

이들 동남아세아에서 인도에 정착한 민족은 드라비디안(Dravidian)들이며 북으로 해안선 따라 이동한 민족은 중국의 동해안과 한반도에 정착한 신석기시대의 우리 민족과 언어가 유사한 상스크릿이다. 후에 만주, 몽골, 티벧트에 이주하여 유목국가들을 세운 민족이라고 본다. 아프리카에서 유럽대륙으로 7만 년 이전에 진입한 인류는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생존하지 못하였으나 동남아세아에서 기후의 변화에 적응한 후에 서남아세아에 정착하였다가 해안선 따라 유럽에 이주해 정착한 민족은 오랜 동계절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검은머리는 금발머리가 되고 파란 눈과 하얀 피부는 태양열과 자외선에 약하고 해빙기를 지나는 1만년 년 전부터 아세아문화에 접하게 되지 안했을까 상상해본다.

7. 종교의 시작과 분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