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 혈연학 지도에서 보이는 동아세아인의 세계적 위치

아래 세계지도는 혈연학자들이 2008년 7월에 미국인의 과학(SCIENTIFIC AMERICAN)에 발표한 인류의 혈연(The Migration History of Humans: DNA Study Traces Human Origins Across the Continents.)이다. 유전학을 통한 세계 인류 분포역사(Evolution’s Genetic Footprints)는 이태리의 카발리 스포르자(Cavalli-Sforza) DNA 연구팀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1998년에 그 내용을 시카고 트리뷴에 연재한 톨스로팩(Paul Slopek)은 푸릿쳐상을 받았다. 2008년 7월 과학잡지에 발표된 상고사적 인류의 이동(Prehistoric Migrations)에 관한 발표는 혈연관계로 보는 현대인류의 새로운 첫 이동(new genetic evidence reveals clues to the first human journeys)을 발표하였고 네숀날 지오그라피(national geography)는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2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두발로 서서 걷는 인류의 모습은 진화를 계속하여 드디어 10만년 전경에 현대인류가 출생하고 그들은 5만년 전경에 해뜨는 동쪽을 향하여 인도양 해변을 따라 동남아세아에 이르러 인류생활의 안식처를 찾았다. 계속해서 해변길을 따라 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 한반도에 이르렀을 때 죽음의 계절 겨울을 만난다. 이곳에서 현대인류는 처음으로 자연에 도전하고 자연을 극복하는 인류의 능력을 얻어 내륙의 사계절 기후에 적응하는 생활방법을 찾는다. 그후에 해양민족이 내륙민족으로 변화하여 M174부류는 내륙으로 진출하고 M130부류는 해안선 따라 사이베리아와 알라스카를 지나 북남미 대륙으로 진출한다.

모든 현대 인류는 하나의 부모에서 시작하였고 혈연(genealogy)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혈연관계를 먼저보고 다음은 고고학적(archeology) 관점에서 보고 그런 다음 문자의 기록역사(history)를 보면 새로운 눈으로 보는 세계사의 그림이 그려진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기록에 의존하는 역사관이었기에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세로운 정보시대를 맞아 이들 3가지 분야를 종합해서 보면 현대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동쪽으로 움직였음을 보게 되고 현대 인류의 문화와 문명은 동아세아에서 시작하여 서쪽 지중해와 북남미 대륙으로 전파되었음을 쉽게 보게 된다.

2백만 년 전부터 일어서서 두발로 걷기 시작하는 인류가 어머니의 젖을 먹 듯 자연이 공급하는 음식을 먹으며 어머니의 품처럼 따듯한 아프리카에서 자랐다. 현대인이 나타난 때는 고작 10만 년 전이었으며 그들은 아직 언어가 없어 소리와 얼굴 짓과 몸짓으로 소통하며 바닷길을 따라 해 뜨는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머물었지만 기후조건이 정착생활에 적합하지 못했다. 유럽대륙에 빙하기 기온은 아프리카 열대기후와 격돌하여 사하라 사막을 만드는 삭막한 기후였든 싶다.

다시 동쪽으로 인도양을 지나 인더스 강과 갠지스 강을 지날 무렵에 동남아세아의 기후 좋고 음식이 풍부하여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때 지금의 인도네시아는 하나의 대륙으로 오스트랄리아 대륙도 아세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 인류생활은 이곳에 이르렀을 때 음식을 수집하고 동물의 수렵이 쉬운 땅을 차지하며 정착된 씨족사회로 부락을 이루기 시작한 듯하다. 처음으로 정착생활이 시작하고 이때까지 짐승처럼 소리 내고 얼굴과 몸짓으로 소통하던 생활에 언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은 것이다.

동물이 하루 종일 음식을 찾아 먹듯 사람도 가족끼리 음식을 찾아 저장하기 시작하고 동물이 짝을 찾아 새끼를 보호하듯 인간 생활에도 공격과 방어의 단체적인 분위기가 조성 되었을 것이다. 동남아세아에 이르러 더욱 인구가 증가하고 처음으로 사회적인 언어가 발달하기 시작하고 바다와 육지에서 수확한 생활필수품을 찾아 저장하는 때가 시작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이때가 5만 년 전이라고 하며 언어학자들은 세계 언어의 뿌리가 동남아세아에 모였다고 말한다. 이들이 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양자강과 황하유역에 정착하게 되는 때에 만주 요동반도에 이르러 앞길이 막혔다. 한반도가 길을 막고 죽음의 계절 겨울철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된다. 여기에서 내륙으로 침투한 민족이 혈연 M174 이고 한반도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지나서 사이베리아를 통과해 북미대륙에 이른 민족이 혈연 M130이었다. M174와 M130으로 나누어져서 M174는 만주, 몽골, 티베트로 이어지는 내륙민의 선조로 보이고 M130은 시베리아, 알라스카를 지나 북미, 중미, 남미에 이르는 해양민족의 선조로 보인다.

5만 년 전에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서해가 존재했던 사실은 지질학적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암록강과 황하가 서해로 흐르고 두 강의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점을 고려하고 동이족의 문화가 중화민족과 격리된 사실로 미루어 서해가 존재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떠나온 현대 인류가 서해에 이르러 M174와 M130으로 나누어진 현상은 그들이 함정에 빠져 어려움을 겪은 증거이다. 그 어려움이 겨울을 만나 게속해서 전진하지 못하였음이다.

한국에서는 M174 사람을 고구려의 선조라고 부르고 M130 사람을 백제의 선조로 보인다. 5만 년 전부터 김치, 된장, 술, 등의 여러 가지 발효음식을 개발하고 토굴주거를 형성하고 방바닥을 따듯하게 온돌방을 개발하는 등의 겨울을 이겨내는 동아세아 민족의 뿌리는 이때부터 영글었으리라. 인류 혈연의 대동맥이 이곳에서 나누어져서 세계의 다른 혈연들이 35,000년 전 경에 지구상에 번식할 때까지 인류의 첫 살림살이는 이미 50,000년 전경부터 동아세아에서 시작한 듯하다. 중앙아세아에서 중국 한족이 팽창하여 중국 동해안으로 이주해온 M122혈연은 10,000년 전부터이고 이때 M4혈연은 동남아세아로 분산하였다.

동아세아의 씨족사회에 조상종교는 부모가 죽으면 흙에 묻고 흙으로 동그란 묘를 지었다. 지금도 그 풍습은 이어지고 있다. 마을에 저수지를 파서 물을 저장하고 그 흙을 쌓아올려 작은 동산 모양의 큰 묘를 지어 올리기도 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반도 남단에 못을 파고 흙산(mound)을 짓고 큰 무덤을 짓던 풍습은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3,000여개의 흙산들을 지어남긴 유적들과 연결된다. 해안선 따라 전해진 흙산 문화는 서유럽에 이르러 덴마크지역에서 볼 수 있다. 북미주 고고학의 발굴은 4만년 전경부터 인류 주거의 유적이 나타난다.

20.000년 전에 유럽 땅에 빙하가 녹기 시작하고 금발 머리칼과 파란눈동자의 서 유럽인들의 인구증가하기 이전부터 동아세아 문화는 이미 북미대륙과 지중해 지역으로 연장되어 성장해왔다. 미대륙 원주민의 생활풍습에 동아세아 풍습과 공통성을 보면 중미 유카탄 반도의 마야문명을 비롯한 원주민이 동아세아의 핏줄이며 서유럽 민족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오랜 역사를 통하여 동아세아와 교류해 왔음을 이해하게 된다. 한반도의 경북 고령군 지산동 주산 능선에는 대가야 왕과 왕족들의 무덤 200여개가 능선을 따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사계절에 적응하는 생활은 겨울이 오기 전에 음식, 옷, 집, 연료 등의 필수품을 준비하는 규칙적인 노력과 단련을 갖추었다. 금속연장으로 큰집을 짓고 큰 배를 만들고 금속 축을 넣은 바퀴는 빠르게 멀리 달리는 전차를 대량생산하는 환경을 갖춘 곳이 동아세아다. 큰 짐을 나르는 달구지를 만들어 운송 산업과 함께 모든 산업이 부흥하였다. 자석을 발견하고 철침나침판을 발명하여 원양항해가 발달하였으며 종이를 만들어 문자기록이 활발하여 정보교환과 기록연결은 장소와 시간의 재한을 초월하였다.

수만 년을 일찍부터 많은 인구가 넓고 큰 대륙에 생활하는 동안에 고대사회의 문화는 언어와 함께 동남아세아에서 시작하고 모든 발명과 발견들은 동아세아의 경쟁사회에서 이루어졌다. 동아세아의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는 유럽과 북미대륙이 빙하기를 격는 동안에 이미 동남아세아 온대지방 전역에 분포되었기에 다른 대륙 어느 부분보다 수만 년을 앞서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였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점이 정보시대에 보는 세계역사가 다름 것이다.

2. 1 한국인 뿌리는 북방계 아닌 혼혈 남방계

032008년 7월에 미국인의 과학(SCIENTIFIC AMERICAN)에 발표한 인류의 혈연 (The Migration History of Humans: DNA Study Traces Human Origins Across the Continents.) 이후에 2017년 2 월 2 일에 한국에 중앙일보는 최준호 기자의 이름으로 박종화 게놈연구소장의 발표를 소개하였다.

“한민족의 뿌리는 어디일까.”라는 제목으로 인류·고고학계 일부에서는 한민족이 알타이 산맥에서 출발하여 몽골과 만주 벌판을 지나 한반도로 들어온 북방민족이라고 추정해왔다. 이들 지역 사람의 언어·풍습·생김새 등에 공통점이 많다는 게 그 근거였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과학계의 판단은 다르다. 2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에 따르면 한민족은 3만~4만 년 전 동남아~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지방으로 흘러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2009년 UNIST는 한민족이 동남아시아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한 남방계의 거대한 흐름에 속해 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는데, 이번에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단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위쪽 프리모레 지역의 ‘악마의 문’(Devil’s Gate)이란 이름의 동굴에서 발견된 7700년 전 20대와 40대 여성의 두개골이었다. 프리모레는 한국 역사 속 옛 고구려·동부여·옥저의 땅이다. 게놈연구소는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이 두개골들의 유전체를 해독, 분석했다.

DNA분석 결과 악마의 문 동굴인은 3만~4만 년 전 현지에 정착한 남방계인으로,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의 앞니’(shovel-shaped incisor)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들은 현대 동아시아인의 전형적인 유전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와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악마의 문 동굴인은 현재 인근에 사는 ‘울치(Ulchi)’족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근처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중에서는 한국인이 이들과 가까운 유전체를 가진 것으로 판명됐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가진 것과 같았다고 보도하였다.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종류가 같다는 것은 모계가 같다는 것을 뜻한다.”며 “두 인류의 오랜 시간 차이를 고려해도 유전체가 매우 가까운 편으로, 악마의 문 동굴인은 한국인의 조상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악마의 문 동굴인의 유전체가 한민족의 모든 부분과 일치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정확한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구성을 계산하기 위해 악마의 문 동굴인과 현존하는 동아시아 지역 50여 개 인종의 유전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악마의 문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과, 현대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유전체를 융합할 경우 한국인에게 가장 잘 표현됐다. 시대와 생존 방식이 달랐던 두 남방계열의 융합이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대 한민족의 유전적 구성은 1만 년 전 농경시대의 남방계 아시아인에 훨씬 더 가깝다. 수렵 채집이나 유목을 하던 극동지방 수렵 채취인보다 논농사를 하던 남방계 민족이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수렵 채집을 위주로 생활하던 옛 극동지방 부족들의 현재 인구는 많아도 수십만 명을 넘지 않는다고 보도하였다.

박종화 소장은 “거대한 동아시아인의 흐름 속에서 기술 발달에 따라 작은 줄기의 민족들이 생겨나고 섞이면서 한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UNIST의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일자(미국 현지시간)에 발표됐다.

2.2 동아세아인은 현대인류 중에 재일 먼저 이다.

동아세아 사람은 특유하게 생겼다. 한국, 동북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네팔, 월남, 등의 사람들을 보면 다른 민족의 모습과 다르다.

19세기의 영국의사, Dr. J. Langdon Down은 퇴행성 증후군(Down syndrome) 증상을 가진 환자를 Mongolism이라고 불렀다. Dr. Down은 현대 인류의 초기에 미성숙한 모습을 동아세아 사람의 모습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민족이 공통적으로 가진 이 퇴행성 증후군(Down syndrome) 증상 환자의 모습이 동아세아의 몽골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50,000전의 인류인 동아세아인은 35,000전의 서남아세아나 유럽 사람의 모습과 다르다. 눈이 가늘고 광대뼈가 높고 코가 작은 얼굴에 치아형태도 다르다. 월남, 대만, 동중국, 일본, 몽골, 티베트, 동유럽, 시베리아, 등의 사람들 얼굴에 치아의 구조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오래된 몽골리즘의 특징을 가졌음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인 듯하다.

그들은 50,000전의 미성숙한 인류의 모습을 어떤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보전해왔다고 이해된다. 다른 세계 어느 곳 보다 일찍 지구상에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문화와 문명도 일찍 시작한 민족이 동아세아의 우리 민족이다.

지난 100,000년 동안 지구상에 기후변화를 보면 10만 년 전부터 8만 년 전까지 현재와 같은 더운 기후가 계속되었다가 7만 년 전부터 지구의 기온은 추어져서 유럽대륙, 아세아대륙의 서북편, 그리고 북미대륙에 빙하기가 시작된다. 그때부터 12,000년 전까지 빙하기가 계속되는 동안 바다물의 수위는 100미터에서 300미터가량 낮았기에 지금의 동남아세아 섬나라들(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아세아대륙의 한부분이였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사이에 인도만큼 큰 대륙(Sundaland)이 있었다고한다. 이제 바다 밑에 놓인 대륙에 숨겨진 고대동아세아 문화유적은 앞으로 전개되는 해저탐험에 크게 기대된다. 이대륙이 바다에 잠기는 과정 중에 그 문화는 동쪽으로 폴리네시아(Polynesla)에 도피하였고 그중에는 적도선의 해류를 따라 남아메리카에 도착하여 올맥(Olmec)문화가 시작되고 후에 동아세아 인들이 남미에 이르는 항로개척이 된듯하다. 올맥 문화는 남미에서 시작하여 중미에 나타난 전례 없는 고도의 문화이며 올맥 인들의 얼굴은 잎술이 크고 눈이 크고 넓은 코를 가진 포르네시안의 모습이며 하와이 원주민의 모습에 방불하다.

이들 동남아세아에서 인도에 정착한 민족은 드라비디안(Dravidian)들이며 북으로 해안선 따라 이동한 민족은 중국의 동해안과 한반도에 정착한 신석기시대 사람들이며 후에 만주, 몽골, 티베트에 정착하여 유목국가들을 세운민족이라고 본다. 아프리카에서 유럽대륙으로 7만년이전에 진입한 인류는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생존하지 못하였으나 니안데르타르 (Neanderthal) 인류가 유럽에 2만 년 전까지 존속하였다가 사라졌다.

동남아세아에서 기후의 변화에 적응한 후에 서남아세아에 정착하였다가 해안선 따라 유럽에 이주해 정착한 민족은 오랜 동계절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검은머리는 금발머리가 되고 파란눈 하얀 피부는 태양열과 자외선에 약하고 해빙기를 지나는 9,000년 전부터 아세아문화에 접하게 된 듯하다. 아프리카에서 뒤늦게 서남아세아에 이주해온 민족은 인구밀도가 높은 동남아세아에서 이주해온 민족들과 합하여 아랍인들이 되었고 내륙으로 진출하여 동아세아와 동남아세아에서 이주해오는 민족들과 합하여 중앙아세아인들이 되어 동아세아 인들의 압력을 받아 인도 북부에 이주하고 후에 중국 한족이 되어 중국의 주나라 때 중국동부와 혼합하여 동북 아세아인이 된 듯하다.

2.3 문화와 문명의 시작

모든 생명은 좋은 종자를 선택하고 길러내기 위하여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하게 되어있다. 수컷들의 뿔과 발톱과 사나운 성격은 강자가 되어 암컷에게 좋은 씨앗을 전해주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도 전쟁은 계속되었고 인류역사도 경쟁과 전쟁의 역사로 가득하다. 물이 풍부한 곳에서 물이 마르면 물을 찾아 이주하고 음식이 고갈되면 음식을 뺏어오는 싸움이 시작되기에 싸움과 전쟁은 목숨을 가진 것들의 생활 방법이었다. 문화와 문명에서 새로운 지식과 경쟁력으로 승리하면 그 문화와 문명은 계속해서 다음에 이기는 승자에게 전해졌다.

인간의 본능은 음식을 찾아먹는 능력과 남녀가 교제하여 자식을 낳서 기르는 능력으로 이루어졌기에 사랑은 문화의 근원이 되었고 생존경쟁은 문명의 근원이 되었다. 해안선 따라 가장 빠르게 분산된 원시인들은 채집생활에 의존하여 자연음식물이 풍요한 지역을 찾아 이주하였으며 계절 따라 음식물의 공급이 줄어들면 철새들처럼 유동생활에 익숙하였다. 여름에 야채 가을에 열매 그리고 겨울 봄에 씨와 뿌리를 먹으면서 바다의 생선, 조개,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는 채식과 육식을 겸하였다. 남자와 자식을 사랑하는 여자의 본능이 주축으로 모계사회가 수만 년을 계속해 오는 중에 씨를 심어 농경이 시작되고 작은 짐승을 길러 가축이 시작되었다.

수만 년 동안의 채집생활에서 씨를 먹다가 씨를 심어 경작을 시작하게 되고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본능은 흙에서 식물생명이 자라고 기르는 동물이 새끼를 낳아 기르는 즐거움에 모계사회의 정착생활이 시작된다. 정착생화 중에 나무는 불을 피는 연료, 생활에 필요한 연장, 집을 짓는 자료로 인류생활에 가장 필요한 생물 중에 하나였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던 가족의 사랑을, 가족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보호하는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과 두려움에서 종교의식이 시작되고 즐거운 의식, 슬픈 의식, 분노 의식 등의 여러 모습의 개인적인 혹은 단체적인 예식이 생활에 포함되었다. 하늘에서 오는 좋은 기후, 땅위에 풍년, 그리고 가족들에게 일어나는 행운을 바라는 종교의식과 그에 연관된 문화 활동이 시작되었다. 해, 달, 산, 강, 바다, 바위, 나무 등의 모든 자연물에 종교의식을 갖인 도교와 흰두교의 양식이 시작되었다. 부모와 선조들 그리고 사회에 지도자의 영혼에 재사를 드리는 유교의 의식도 씨족사회가 성장하면서 기반을 견고히 세웠다.

나무에 불을 지피어 음식을 구어 먹고 돌을 깨어 도구로 사용하고 사냥하는 무기로 사용하며 구석기 시대의 단체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언어가 시작하였다. 동아세아의 신석기 시대에 정착농경이 시작되고 멀리서 바위를 끌어와 고인돌(dolmen)을 세워 조상신의 신전을 세웠다. 흙을 빚어 불에 굽는 방법으로 그릇을 만들어 곡식을 보관하였다. 나무 연장은 돌연장으로 발전하고 차츰 청동기 연장으로 발전해 갔다. 계절 따라 음식을 수집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음식을 저장하는 독(흙을 구워만든 큰 옹기)을 땅에 묻어 보관하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5만년 전경에 한반도에 정착한 해양민족은 농경에 익숙해지고 1만 7천 년 전의 볍씨들이 충북 청원에서 발굴되는 정도로 농사문화가 세계에서 일찍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인구밀도가 높았고, 인구가 많은 만큼 인원이 많이 필요한 고인돌 무덤들이 무더기로 남아있는 고고학적 유산이다. 한반도 남단에 신석기시대의 고인돌은 2만 여개가 모여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해변에 8만 여개의 고인돌 중에 4만 여개는 동아세아에 집중되었다.

모든 생명은 좋은 종자를 선택하고 길러내기 위하여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하게 되어있다. 수컷들의 뿔과 발톱과 사나운 성격은 강자가 되어 암컷에게 좋은 씨앗을 전해주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도 전쟁은 계속되었고 인류역사도 경쟁과 전쟁의 역사로 가득하다. 물이 풍부한 곳에서 물이 마르면 물을 찾아 이주하고 음식이 고갈되면 음식을 뺏어오는 싸움이 시작되기에 싸움과 전쟁은 목숨을 가진 것들의 생활 방법이었다. 문화와 문명에서 새로운 지식과 경쟁력으로 승리하면 그 문화와 문명은 계속해서 다음에 이기는 승자에게 전해졌다.

 

나무에 불을 지피어 음식을 구어 먹고 돌을 깨어 도구로 사용하고 사냥하는 도끼로 사용하며 구석기 시대의 단체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언어가 시작하였다. 동아세아의 사계절을 맞아 신석기 시대에 정착농경이 시작되고 숯불과 석탄불에 청동금속을 녹여낼 무렵 멀리서 바위를 끌어와 고인돌(dolmen)을 세워 조상신의 신전을 세웠다. 흙을 빚어 불에 굽는 방법으로 그릇을 만들어 곡식을 보관하였다. 나무와 돌연장은 차츰 청동기나 철기 연장으로 발전해 갔다. 계절 따라 음식을 수집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가족의 음식을 저장하는 독(흙을 구워만든 큰 옹기)을 땅에 묻어 보관하는 습관도 갖게 되었다.

 

동아세아의 석탄생산은 세계 어느 곳보다 금속문화를 일찍부터 발달하게 하여 동아세아 상나라의 금속유물들은 세계의 박물관마다 전시되어 있다. 동아세아에 석탄의 높은 열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철기문화도 발달하게 하였다. 소를 길러 농사짓고 만주일대의 조랑말을 집에서 기르고 늑대를 집에서 길러 개가 되고 양, 돼지, 닭을 음식에 쓰려 집에서 길렀다. 강력한 금속무기를 구비하고 조랑말은 탄 훈족은 개와 돼지를 동반하고 동아세아에서 서유럽까지 달려가 로마와 전쟁을 한 사실을 보아도 유라시아의 대륙은 우리 선조의 운동장이었다.

 

비단길(silk soad)은 동아세아 사람들이 유라시아대륙의 서쪽으로 진출하는 마당길이었다.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몽골 쪽에서 새로운 부족을 탄생 시키니, 그 부족의 이름이 “돌궐족”이다. 이 돌궐족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나라를 만드니 오늘의 터키가 되었고 터키가 한민족인 우리와 형제국이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터키의 역사에도 “우리는 아사나 민족(아사달 민족: 빛의 땅 민족. 태양족)”이라고 한다. 훈족이 대부분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만든 나라가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를 만들고 서쪽으로 계속 압박을 하니 ‘게르만 민족’이 대이동을 하게 된 듯하다.

 

56개 민족이 모여 사는 중국의 역사를 보아도 송나라 시대를 제외하고 북방민족이 정권을 지배하는 제국의 역사가 대부분이며 만리장성도 북방민족끼리 전쟁한 국경선이다. 이들 만리장성과 비단길이 동아세아의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던 한반도 주위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뻗어나갔음은 5만 년 전부터 시작된 동아세아 역사의 시발점임을 보여준다.

 

5만년 전경에 한반도에 정착한 해양민족은 농경에 익숙해지고 1만 7천 년 전의 볍씨들이 충북 청원에서 발굴되는 정도로 농사문화가 세계에서 일찍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인구밀도가 높았고, 인구가 많은 만큼 인원이 많이 필요한 고인돌 무덤들이 무더기로 남아있는 고고학적 유산이다. 한반도 남단에 신석기시대의 고인돌분포를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해변에 8만 여개의 고인돌 중에 4만 여개는 동아세아에 집중되었다.

 

과거에 유럽의 역사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는 중국과 인도에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1960년대에 미국학자들이 세계문화의 근원이 서남아세아에 있다고 주장하는 중에 최근에 DNA 연구에 따라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이 확실히 믿어지면서 아프리카에 가까운 서남아세아에서 인류문화가 시작됨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유럽과 미국학자들의 동아세아문화에 관한 지식이 몹시 재한 되어있기 때문이다. 서구적인 관찰에 의존하였기에 우리 문화를 보는 우리의 견해와 차이가 크다. 세계일차대전과 이차대전을 겪는 동안에 아세아국가들은 침략을 당하고 내전전란을 겪고 가난과 빈곤 속에 그리고 중국의 공사주의 문화혁명으로 학자들을 제거하는 등 파란을 겪어왔다. 2차 대전 동안에 일본의 정치적 역사왜곡은 아세아문화의 정체를 더욱 흐려 놓았다. 그러한 현실에서 미국과 유럽학자들이 보는 아세아의 역사와 문화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인도, 중국,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세아에서 역사 바로보기 운동과 호흡을 같이하여 필자는 세계역사 바로보기 운동도 전개될 수 있었으면 한다. 미 대륙에 원주민이 삼만 오천 년 전쯤부터 동아세아에서 이주했음을 학계에서 확인함도 1990년대에 이르러서다. 더욱이나 미 대륙에 원주민문화와 동아세아 문화를 비교하고 공통성을 설명함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된다.

현대 인류의 혈연 중에 가장 일찍 나타나 아프리카에서 동아세아에 이르고 그들의 후손이 북남미 대륙으로 진출하고 아세아 내륙으로 만주, 몽골, 티베트, 동유럽까지 진출하는 동안에 동아세아의 석기문화가 고인돌과 피라미드를 새우고 천문 지식을 쌓으며 종교 발달에 어떤 공헌을 하였는지 추적하고 싶다.

지중해에 그리스학자 Plato는 그리스의 문화가 Atlantis에서 왔다고 기록하였기에 지금도 유럽학자들과 탐험가들은 아틀란티스를 찾고 있다. 필자는 Atlantis는 동아세아에 있었음을 지적하고자한다. 건축가로서 고고학적 조형예술과 건축유물들을 그리고 문자기록 이전에 자료들을 비교하여 본다. 미 대륙의 원주민문화가 동아세아의 하, 상, 주나라들의 2000년 동안에 걸친 역사유물과 공통성을 설명하고 그들의 풍습을 비교한다. 그보다 더 오래전 삼만 년 전부터 연결된 역사의 가능성을 설명함으로서 동아세아와 미 대륙문화의 연결은 아세아와 유럽의 연결과 함께 있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2.4 한반도에 고구려의 선조와 백제의 선조

아프리카에서 떠나온 현대 인류가 서해에 이르러 M174와 M130으로 나누어진 현상은 그들이 함정에 빠져 어려움을 겪은 증거이다. 그 어려움이 겨울을 만나 게속해서 전진하지 못하였음이다. 아프리카에서 동아세아에 이르는 5만년의 여정에 돌연변이 기후를 만나 추위를 겪는 경우가 있었겠지만 도전하지 않고 회피하여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에 이르렀을 때는 도피할 방향이 없고 도전할 길밖에 없었다. 여기서 남방민 백제의 뿌리와 북방민 고구려의 뿌리가 나누어졌다.

M174 사람을 고구려의 선조라고 부르고 M130 사람을 백제의 선조로 본다. 한반도에 북한 체질과 남한 체질이 있다. 유럽도 독일 체질이 있고 프랑스 체질이 있듯이 북방 체질은 언어가 거칠고 딱딱한 반면에 남방 체질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고구려 문명은 진보적이어서 고분에서 보여주듯 음양오행을 비롯한 과학과 금속문화를 비롯한 대륙문화를 보인다. 백제 문화는 해양산업과 농경에 위주하여 산동반도를 비롯한 중국해안과 일본열도와 동남아세아 해역을 지배하였다.

백제문화는 원래 해양민족의 특성을 잘 보존한 호남과 충청지역에 유래되었고 고구려 문화는 내륙생활의 개척문화로 만주와 몽골 중원으로 통하는 세계문명의 첨단을 지니고 있다. 고구려 고분에서 보여주는 천문과 음양오행은 인류문명에 과학의 시작이다. 동이족의 문화가 중화민족을 일깨우고 비단길을 개척하여 유럽을 일깨운 세계문명의 흐름이 시작한 곳이다. 북방의 기마민족인 훈족이 한반도에 이르어 경상도와 일본열도에 정착하였기에 이 지역 혈연은 M174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삼국시대 문명은 혼합하여 서로 가까워졌다.

백제가 신라에 정복될 무렵에 백제의 정부와 귀족은 백제의 영토인 일본열도에 옮겨서 일본의 문명과 문명은 백제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언어와 문화가 한반도에서 분리되는 때는 고려가 원나라의 문화권에 속하여 대륙문화를 얻게 되고 일본은 변하지 않고 한반도의 삼국시대 문화를 보존해온 결과이다. 일본은 백제인들이고 신라에 복수하려는 근성으로 한반도의 해변을 끊임없이 괘롭혔고 임진왜란과 현대역사에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졌다.

3. 언어의 발생과 문자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