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아세아 피라미드의 진화와 분포 (Pyramid evolution at East Asia)

동남아세아의 음식이 풍부한 환경과 기후에는 농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반면에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지역은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세아의 흙무덤은 동그랗다. 흙을 모아 흙산(mound)을 짓는 문화는 농경 생활을 시작하며 땅을 파서 물길을 내고 흙을 옮기는 노동에서 시작했다. 사계절에 맞추어 씨를 심고 거두는 농경생활이 동아세아에서 발달하였다. 못을 파서 저수지를 만들고 남은 흙은 흙산을 올려 제단을 쌓았다. 조상의 영을 하늘에서 내려온 신으로 여기며 종교가 시작된다. 조상의 무덤으로 큰 돌을 옮겨와 세우고 그 위에 넓은 돌을 얹어 조상의 신전이 고인돌을 세웠다.

세계에 8만개 고인돌중에 4만 여개가 한반도 주위에 있어 한반도에서 시작된 종교형식임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을 세우는 문화가 동아세아에서 발달하였다가 금속문화가 시작되면서 금속 연장으로 바위를 다듬어 압록강유역에서 적석총(pyramid)을 세우는 문화로 발달하였다. 흙산mound)을 짓는 문화는 동쪽으로 북미대륙과 서쪽으로 티베트로 전해지고 고인돌 문화는 10만 년 전부터 열려있는 해변길 따라 동남아세아에서 지중해에 이르고 유럽까지 전해졌다. 층단식 흙산은 남미로 전해지고 적석총 피라미드는 아프리카의 나일강 유역까지 전해진다.

1.1 흙산의 발생과 성장 (reservoir and mound)

동아세아 사람들은 현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타나 해 뜨는 동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5만년을 거쳐 동아세아에 정착하였다고 혈연학자들은 2008년에 발표하였다. 유럽은 빙하기여서 사람이 살지 못했고 서남아세아는 정착할 수 있는 기후환경이 안되어 정착생활은 동남아세아에서 농경생활은 동아세아에서 시작했음을 상상하게 한다.

사람이 짐승처럼 음식을 찾아 주어먹던 시절에서 동아세아의 농사를 짓는 시절로 바꾸어지면서 씨를 뿌려 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했다. 비가 오는 때 빗물을 모아 가뭄에 살아남기 위해서 저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수지를 만들 적마다 흙을 모아 재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 지내기 시작함이 흙산을 짓는 시작이었던 싶다. 한반도의 흙산마다 저수지가 있던 기억이 난다. 흙산은 하늘에 제사 드리는 장소였다가 나중에 가족의 묘가 되어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훗날에 쟁기를 만들어 농사지으면서 흙산은 더욱 커진다. 한반도의 묘지는 둥글다, 동그란 묘지는 크게 흙산이 되어 동쪽으로 북미 대륙으로 전해져서 오대호(Great Lake) 주의와 미시시피 강변 따라 3,000여 곳에서 볼 수 있다. 서쪽으로 북중국과 티베트에 전해지고 남쪽으로 동인도에 전해저서 불교에 석가의 묘가 둥글다. 동그란 묘지는 신전의 건축물에 적용되어 불교문화가 인더스강의 서인도를 지나 서남아세아에 전해지면서 건축물들의 둥근지붕(Dome)이 되지 안했을까 상상하게 한다.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석탄불에서 생산되는 금속무기와 도구는 새로운 생활과 생활개선에 따른 인구증가로 강력한 사회를 조성하면서 이웃 대륙과 국가들에게 그 문화를 전해주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동남아세아에서 석기시대 인류가 계속해서 이주해오는 산동, 요동, 한반도는 신석기시대 인류역사에 가장 분주한 교통요지가 되었다. 방죽을 파서 못을 만들어 물을 모으고 흙산(mound)과 고분을 지어 제사를 지내며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인구증가는 계속되었다. 흙의 문화와 석기시대의 큰 돌을 멀리서 끌어다가 신전을 세우는 고인돌 문화가 융합되어 세계에 어느 곳보다도 가장 일찍 문명과 문화가 이곳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였다.

1.2 동아세아의 농경진화 (Agricultural evolution at East Asia)

동남아세아 기후는 물이 어는 겨울이 없어 한 해 동안 채집생활로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동아세아는 겨울에 얼음이 얼면 음식을 얻을 수 없어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길러서 가을에 거둬드려 겨울을 준비하는 농업이 시작하였다. 단체생활의 결속이 필요했다. 선조 때부터 이어오는 인연으로 씨족사회가 결성되고 하늘의 기후와 선조의 영적 보호를 받기 원하여 마을 사람들 모여와서 멀리서 바위를 끌어와서 고인돌을 세웠다.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만으로 보면 기원전 8000년 이전부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 유적은 한반도 전 지역에 고루 퍼져 있으며, 주로 큰 강 유역이나 해안 지역에서 발견된다. 연대가 가장 이른 곳이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간석기와 낚시, 바늘 등의 뼈 도구가 있다.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가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보다 더 넓은 눈으로 보아야 한다.

메소포타미아 우룩족의 토기는 6,000년 전부터 나타나고 스메르족 토기는 5,000년 전부터 나타나기에 동아세아의 농경생활은 서남아세아보다 적어도 3,000년 이전에 발달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동아세아는 10,000년 전부터 농업의 혁명으로 인구가 팽창하고 짚으로 집을 짓고 짚으로 배를 만들어 5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와 동아세아 사이에 이미 개통된 해안선 통로를 따라 서남아세아와 서유럽까지 이주해간 듯하다. 동쪽으로 북미대륙에 이르고 남미 페루지역까지 교류한 듯하다.

<동이 한국사>의 저자 이기훈씨는 동아세아의 세계 최초의 토기를 소개하고 한반도 주위에서 1만년 이전의 토기들이 발굴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는 8,500년 전부터 나타났다.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는 7,000년 전에 나타나 약 4,000년 동안 서쪽으로 전해져서 아래 지도와 같은 분포를 모인다.

고인돌을 세우는 신석기 시대의 생활을 관찰해보면 흙을 구워 만든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였고 소, 개, 되지, 닭, 염소, 등의 가축을 길렀으며 청동 금속도구도 사용하였다. 민무늬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 이전의 형태이며 정착된 농경시대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오래 동안 토기를 바닥에 놓지 않고 나무받침대에 올려놓았기에 처음에는 밑 모양이 뾰족하였다가 토기의 생산이 흔해지면서 바닥에 내려놓아 토기 밑이 편편해지기 시작하였다. 청동 금속도구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토기제작에 빗살무늬가 나타나고 세계에서 빗살무늬가 가장 흔하게 발굴되는 지역이 한반도이다.

빗살모양의 무늬 새기는 틀을 그릇 바깥 면에 짤막한 줄을 누르거나 그어서 새겼기에 통칭 ‘빗살무늬’라고 부른다. 이러한 빗살무늬는 질그릇에 따라 여러 모습을 나타내는데, 한국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짧은 줄을 한쪽 방향으로 또는 서로 방향을 엇바꾸어 가면서 그려진 생긴 것이다. 그릇 종류에는 독모양의 크고 작은 항아리, 단지, 대접, 보시기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진흙에 모래만 섞은 것과 석면, 활석부스러기 같은 것을 섞은 것이 있으며 갈색이 기본을 이룬다. 대체로 섭씨 600~700°의 열을 가하여 구운 것인데, 땅을 판 구덩이에서 별다른 특별한 시설 없이 장작불을 피워도 만들 수 있다. 처음에는 제사 때 제기로 사용하다가 생활의 저장용, 취사용, 식기로 각각 사용되었던 듯하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빗살무늬 토기는 중국 둥베이[東北]지방과 옌하이저우[沿海州] 등 주변일대에 널리 퍼져 시베리아지역을 지나 북유럽 일대에 캄케라믹 (Kammkeramik : 櫛文土器)로 분포된 상황을 불 수 있다. 문양의 단순성과 방사성 탄소연대측정치로 보아도 한반도의 빗살무늬 토기가 가장 일찍 시작하였다고 추정한다. 신석기시대 유적이 분포된 곳은 동북해안지방, 서해안지방, 동해안지방, 남해안지방의 4곳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재료(바탕흙)·색깔·두께·굳기·무늬 및 토기 모양(기형) 등이 있다. 한강 중류의 암사동유적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래질의 바탕흙에 반쪽 계란 모습을 했으며 생선뼈무늬들이 주로 그려진 그릇을 보면 해양민족의 산품이며 크기는 쓰임새에 따라 3가지 정도로 나누어진다. 황해도 지탑리 유적이나 함경북도 서포항· 농포동 유적 등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찰 흙질에 납작한 밑을 가진 토기들이 등장하고 있다. 강원도 오산리지방으로 가면 납작밑에 눌러 찍은 무늬를 주로 쓴 찰흙질토기들이 나타난다.

남해안지방으로 가면 이른 시기부터 납작밑과 둥근밑(뾰족밑 포함) 토기가 공존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토기모양도 다양했을 것이다. 이곳에는 민무늬토기들이 많으며, 특히 덧무늬토기들이 출토되어 가장 일찍 시작된 듯하다. 한반도 남단에서 민무늬 토기와 밑 끝이 달걀 모양의 단순한 빗살형태로 초기적인 토기형태가 시작되고 한반도 동북지역과 시베리아로 갈수록 밑이 납작하고 복잡한 빗살형태의 후기적 특징을 보임은 빗살무늬 토기가 한반도 남단에서 시작되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소가 쟁기를 끌어감은 동남아세아에서 시작되었고 통나무를 굴려서 거석을 운반하는 생활도 동아세아에서 시작하였기에 바퀴의 역사는 동남아세아에서 세계의 언어가 시작하듯 인류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기슬인 듯하다. 물레와 물레방아, 인력거, 달구지, 마차, 전차, 등의 수레의 역사는 신석기시대 농경생활의 발달과 연결된다. 인력거는 사람이 끌어가는 두 바퀴의 수레이다. 수레의 가장 먼저 시작한 모습이며 동아세아에는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Eden in the East by Stephen Oppenheimer 1998”에 의하면 고고학자들의 최근 발굴보고에 태국에 농산물 유적은 15,000년전의 일이며 쌀농사의 유적도 9,000년전으로 추적된다. 곡식을 갈아서 씨겁떼기를 벗기도 곡식가루를 만드는 둥근맷돌은 숫돌과 암돌사이에 마른 곡식을 넣으면서 돌리면 눌린돌 사이로 껍질이 벗겨진 곡식가루가 밖으로 밀려 나오기에 도릿개라고도 하는데 인도네시아 섬들의 고대유물들 중에 26,000년전에 사용되었으며 동남 아세아 국가들과 남북미 원주민들 생활에 필수품으로 최근까지 사용되어왔다. 이들 농사 도구는 서쪽으로 전해져서 에짚트와 서남아세아에서 12000년 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릿개도 금속도구가 사용된 이후에 만들어졌다.

찰스힉함(Charles Higham)은 이들이 쌀농사를 지었으며 이곳에서 양자강 하구에 이르는 생활지역을 설명하였고 윌햄솔하임(Wilhelm Solheim)은 이들 농업문화는 지구의 해빙기(12,000‐7,000년전)이전부터 생활에 적용되었다고 주장했다. 흙을 불속에 넣고 그릇을 구워 만드는 석기시대 산업혁명은 동남아세아에서 12,000년전에 있었으며 서남아세아에는 9,000년전에 나타났다고 말한다. 타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나라들은 유럽의 빙하가 녹아서 바다의 수위가 오르기 전에 육지로 연결되었으며 아스트로 에이시아팈(Austro‐Asiatic) 언어를 사용하는 아스트로네시안(Austronesian)이 살고 있었다고한다. 이들 신석기시대 생활에 관한 연구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보고되었다.

1.3 고인돌에서 적석총으로 진화 (Dolmen building to pyramid building)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의 생활변천과 문화발달은 오랜 세월을 거쳐 크게 달라졌다. 원시시대의 자연식품 수집에 의존하던 모계가정에서 생산 농경의 부계가정으로 변화한고 민무늬 토기에서 빗살무늬 토기로 산업화한다. 동아세아에 누워있는 여성 상징 고인돌에서 서있는 입석, 남성 상징 고인돌로 바뀌었다가 두개의 선돌위에 누운 돌(지붕돌)을 얹는 신전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없는 선사시대의 진화과정이다. 현대 인류의 가장 일찍 정착한 한반도에 선사시대의 변화가 한곳에서만 일어남을 보게 된다. 곧 이어서 남부의 흙산(Mound)문화가 고인돌 문화와 연합하여 돌산(피라미드)문화가 태어남도 이곳에서 본다.

아직 나무배를 만들기 이전에 짚으로 배를 만들어 인구 많은 동아세아에서 인구가 적은 서남아세아와 빙하기에서 벗어난 유럽으로 이주해 갔다. 인류의 선박건조 기술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구어 먹는 일처럼 일찍 시작하였다. 물이 있는 곳에서만 살 수 있는 인류는 나무들을 묶어 물에 띄우기 시작하고 대나무를 엮어 배로 사용함은 지금도 동아세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금속 도구가 있기 전에 만들어진 배는 짚배다.

한반도 주택에 초가지붕(아래 사진)처럼 해변의 농가에는 가을 곡식거둔 후에 남는 지푸라기나 갈대로 지붕을 씌웠다. 지푸라기와 갈대를 엮어 배를 만들었음은 한국의 제주도박물관을 비롯해 동남아세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고 동남아세아 문화와 연결된 남미의 페루에서 흔하게 보는 인류역사에 가장 오래된 선박건조 방법이다. 짚배가 각 대륙에 남아있음은 금속시대 이전에 각 대륙을 연결하는 항해시대가 있었음을 상상하게 하게 한다. 한국의 초가지붕과 짚배는 석기시대부터 전해오는 주거건물과 선박 건조방식이며 한반도에 잘 보존 되었다.

금속기구로 나무를 조작하기 이전의 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석기시대부터 선박을 건조하고 계절 따라 기상기후 변화와 해류의 유동방향을 이해하기에 원양항해를 할 수 있었다. 사계절에 익숙해진 동아세아 선인들은 철새들처럼 장거리 여행에 익숙하였고 지금의 에스키모인들 보다 더 오랜 기간을 금식하고 동면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동남아세아 섬나라들에서 적도선에 병행하는 해류와 풍향을 이용하여 태평양을 횡단하고 남아메리카 태평양연안(페루)에 도달할 수 있는 지구력과 생존능력을 갖추었으리라 상상하게 한다. 동아프리카 인들이 뉴기니아에 살고 폴로네시안들이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현상은 적도선 해류의 연결이다. 동아세아인들이 사모아섬과 통가 섬나라에 거주하기 시작함도 이때부터인 듯하다.

석기시대의 고인돌 문화에 금속 무기와 도구가 처음 나타나면서 동아세아의 석탄불에서 금속을 만드는 기술은 세계에서 제일 먼저 나타났다. 비파모양 청동검은 지금의 중국 북지방 요녕지역을 비롯하여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 한국 고유의 청동기로, 중국의 청동기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중국의 과학문명과는 다른 선진적 수준의 기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금속무기와 도구는 인류문명의 시작이며 인류 생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동아세아의 흙산을 지어 묘와 제단을 짓던 풍습은 금속 도구로 바위를 다루는 때부터 적석총을 짓기 시작하였기에 적석총(Pyramid)을 짓는 문화도 동아세아에서 시작하였다.

피터벨욷(Peter Bellwood)는 그의 저서(The Prehistory of the Indo‐Malaysian Archipelago, 1985)에서 이들은 나무껍질을 두들겨 섬유를 만들어 옷을 짜서 입었고 종이를 만들었으며 대나무 가지를 입으로 불어 대나무 안에 독살이 짐승에 맞아 사냥을 하는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거대한 바위를 새워서 제사를 지냈으며 고인돌(dolmen)은 멀리서 운반해온 거대한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그 위에 편편한 바위를 얹어놓은 묘지인데 대만 섬, 황해연안, 한반도일대와 일본에까지 분포되었다고 설명한다. 윌햄솔하임은 이들이 해양민족(Oceanian)이며 7,000년전에 배를 만들어 바다를 항해하였다고 말한다.

거대한 바위를 멀리서 끌어와 성지를 세움은 종교형식 이였으며 6만 년 전에서 일만 년 전 사이에 동남아세아에 인구가 집결된 지역에서 지도체재가 있고 노동력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 풍습이다. 이들 거석문화를 가진 해양민족은 이미 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동아세아에 이르는 길을 열어놓았기에 동아세아에서 대서양까지 왕래하는 일은 어렵지 안했다. 해빙기 이전에 해안선 따라 남인도, 서남아세아, 지중해를 거쳐 스페인과 영국해안에 이르러 거석문화의 유적을 남기었다고 본다. 불란서의 서남부와 스페인의 북쪽의 동굴에서 3만 년 전과 4민 년 전 빙하기 동안에 그려진 동굴 벽화들도 6만 년 전에 개통된 유라시아 해안선 통로에 의한 문화의 교류에서 나타난 듯하다.

고인돌 문화에서 금속무기와 도구가 출현하면서 자연석 바위는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네모 바위로 발전하였다. 자연석 적석총은 네모 바위로 바뀌어 층단식 적석총(Pyramid)가 되었다. 영국의 스톤헨즈(Stonehenge)은 고인돌 자연석을 금속도구로 다듬어 올린 진화된 모습이다. 10,000년전에 이민해온 외래 민족이 3,000년 전에서 6,000년 전 사이에 세웠다고 하는데 30개 거석을 육로와 해로를 통하여 먼 거리에서 가져와 세우고 편편한 바위를 위에다 얹었으며 그 안에 다섯 쌍의 거석을 태양을 향하여 자리를 정했다고 설명한다. 원형배치는 이미 동아세아에서 신의 영역으로 정해진 평면이다. 경주 석굴암 평면을 보면 앞부분은 사방형으로 사람의 공간이고 후반은 원형 평면으로 신의 영역이다.

한국에 이영문이 출판한 ‘고인돌 이야기’와 한국 방송통신위원 KNN방송에 <고인돌 루트>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고인돌의 발자취’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고인돌 역사를 설명한다. 태양신을 따르는 구석기 시대를 지나면서 조상 종교와 천체종교가 나타나고 신석기시대 후반에 이르러 8.000년 전부터 시작하여 철기시대에 이르는 3.000년 동안 민무늬와 빗살 토기를 사용하는 청동기 생활하는 시절이었다. 자연 거석을 멀리서 끌어와 조상의 묘지에 덮개로 누여 놓고 제사를 드리는 초기 남방식 풍습이 후에 세워서 입석묘지로 발전하였다. 두개의 입석 위에 평편한 지붕돌을 얹어 고인돌(Dolmen)을 세우게 되는 북방식 양식이 나타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고인돌의 진화과정이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칼의 원형(原型)인 돌단검(石短劍, 磨製石劍)이 가장 많이 나오고 있다. 만주지역 고조선의 청동기 문화유물은 4,400년전의 것으로 발굴되었고 황하지역 청동기 문화유물은 4,200년전 것이다. 남한에서 나오는 돌단검에서 금속 청동 단검으로 변형된 가장 초기적인 모양이다, 돌단검의 칼날(劍身)과 칼자루(劍把)가 함께 이어 졌다. 여기에 다시 또 다른 칼자루가 덧붙여지면서 만들어진 형태의 변화를 보게 된다. 비파형 단검은 바로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고, 그 후에 한반도 인들의 이동으로 만주에서 많이 생산된 듯하다. 영국과 유럽 해안지대에서 발굴된 직인검은 남한에서 만들어진 돌단검과 형태가 비슷하다. 분명 고인돌과 그 고인돌에서 나오는 유물들을 보면 유럽의 고인돌과 유물들은 한반도의 해양민족의 이동에 따라 퍼져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화가 김득신의 그림 대장간에서 보이는 모습은 청동금속 도구가 사용되는 모습이며 처음에는 선사시대의 산업혁명이었다. 나무기구를 사용함은 모계사회의 가구였지만 금속도구가 사용되면서 산업이 발달하고 남자들의 사회적 기능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자연석을 편편한  석판으로 다듬게 되고 큰 돌을 6면 4각 돌로 만들어 운반하기 쉬워진다. 조상종교의 목관과 옹기 묘를 대신해서 석관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계사회의 수집형 농경에서 금속연장으로 땅을 파서 산업형 농경으로 진보하는 부계사회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고인돌시대에 동아세아의 산업혁명은 인류의 역사를 돌연변이처럼 새롭게 시작한 듯하다.

KNN방송에 한반도에서 유럽에 이르는 7개국 30개 지역의 고인돌 취재를 통해 고대 해(환.한)민족을 비롯한 해양 민족의 활발한 해양 활동을 인류 고고학적으로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한반도 남단에 가장 많이 모여 있으며 한반도 주위를 포함하면 40,000개 달하고 해안선 따라 동남아세아(10,000)와 서유럽까지 연결되어 모두 80,000여 곳에 분포되었다. 아프리카를 떠나 한반도에 이른 현대 인류의 통로가 해안선 따라 동쪽으로 남미에 이르고 서쪽으로 서유럽까지 해안선 따라 이동한 유적들이다.

현대의 지식인은 유럽의 고인돌이 외계인(外界人)이 만든 유적이라고 말하고 지중해 문화는 아틀란티스(Atlantis)에서 왔다고 상상하는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 때가 왔다. 영국의 스톤핸즈(Stonehenge), 프랑스 브르따뉴(Bretagne) 지방, 스페인 등지에 흩어져있는 고인돌의 건축 양식은 한반도의 초기적인 양식에 비하면 시대적으로 훨씬 후기적인 진보된 모습이다. 유럽의 고인돌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4-5천 년 전에 불과하다면 한반도 고인돌 연대는 8천년이전까지 올라간다. 동아세아의 신석기 해양민족이 해안선을 따라 서유럽 해안에 이주해 들어간 여러 곳에는 동아세아인의 언어와 풍습이 남아있다. 그러한 고증은 동아세아의 역사지식이 보급되면서 더욱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한다.

1.4 피라미드의 진화와 분포(Pyramid evolution and distribution)

Robert M. Schoch는 2003년에 출판된 저서 VOYAGES of the PYRAMID BUILDERS에서 중미의 마야문화가 동아세아 상나라문화의 연장된 문화임을 시사함으로서 세계의 피라미드 건축기술 근원이 동아세아에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어머니의 뱃속에 인류의 과거가 숨겨있듯이 동아세아 문화에 피라미드의 진화가 숨겨있는 듯하다. 피라미드는 건축물이기에 건축가의 견해로 설명하려고 한다.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한 민족은 산(mound)을 짓고 고인돌(dolmen)을 새우는 풍습을 가진 민족이다. 그들 신석기 시대 민족은 동아세아 한반도 남단에 살았고 5만 년 전부터 현대 인류로서 가장 먼저 사계절의 농사를 지으며 겨울을 이겨내는 훈련(discipline)된 생활을 시작한 민족이다. 열대지방에서는 나타나기 어려운 과학, 기술, 조직력을 바탕으로 종교적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성장과정을 거쳐서 태어난 결과이지 돌연히 나타날 사건이 아니다. 피라미드 안에 안치된 석곽묘는 고인돌의 구조와 유사하여 피라미드는 고인돌에서 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선조의 영을 모시는 묘지를 흙으로 동그란 모양으로 만드는 풍습은 한반도에서 시작하며 흙산을 짓게 되었다. 선조의 영을 모시는 묘지를 흙으로 동그란 모양으로 만드는 풍습은 한반도에서 시작하며 흙산을 짓게 되었다. 사람이 사는 구덩이 집은 원추형이나 사각추형이 되었다. 후에 피라미드가 사각추형으로 지어짐은 선조의 무덤을 살아있는 사람의 집 모양으로 선조의 돌집을 짓는 의도에서 발달하였다.

1982년에 적봉시 흥룡와촌에서 옥 귀걸이를 비롯해 수십 점의 옥기들이 발굴되어 BC 6200경의 유물들로 판명되어 흥룡와문화로 소개되었으며 한국에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패총에서 발굴된 것들과 같다. 암록강변 수암지역에 매장된 옥돌의 질이라고 한다. 요하 주위에서 발굴된 사해문화, 부하문화, 보조구문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홍산문화(BC4500-BC3000)로 결집되어 요하문명을 대표한다.

홍산문화의 특징은 섬세한 토기문화를 비롯하여 금속도구로 멀리 백두산에서 가져온 옥돌을 조각했고 금속도구로 큰 바위를 필요한 크기로 깨어서 멀리 끌어와 층단식 적석총 피라미드를 짓고 작고 섬세한 석관을 만들어 시신을 안장했다. 홍산문화의 옥돌조각은 황하문명보다 1000년을 앞섰고 층단식 석조 피라미드는 이집트보다 2000년을 앞섰다.

피라미드는 돌로 지은 큰 무덤이다. 두 가지 요소가 합하여 이루어진다. 첫째는 조상을 숭배하는 생활풍습에서 시작되어 조상이나 자신의 시신을 영구보존하여 영생을 믿는 종교적 습관이고 두 째는 큰 돌을 다루는 기술과 대중의 헌신적 노동력 관리이다. 동아세아의 유교적 사상에 부모에 효도하고 임금에 충성하는 태도는 유교 이전에 동아세아의 도덕생활에 그 오래된 역사의 뿌리가 있고 음양오행의 천문지식과 건설기술 과학에 기반하여 거대한 적석총 피라미드가 세워질 수 있었다. 압록강변 지린시 일대와 서안 외곽에 널리 흩어진 수천 그루의 층단식 피라미드 유적들은 고구려 장군총을 비롯하여 피라미드의 고향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수만 년을 거친 생활 풍습 안에 진화과정을 거치지 않은 아프리카나 남미대륙의 피라미드는 외부에서 수입되어 이루어진 문화임을 생각하게 한다.

1945년 미국의 수송기 조종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준 서안시 외곽에 피라미드 집결지는 1963년이 되서야 중국의 고고학계가 관심을 불러왔다고 전해진다. 만주 지린성 일대의 피라미드 군단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 천 개의 피라미드 집결지이다. <한중고고학연구>, 1994, 번역본, 원본은 王仲殊, 中國古代墓葬槪說, <考古> 第5期. pp 449-458.에 따르면 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BC 770년 ~ BC 221년)의 여러 무덤에서 이른바 방추형(方錐形), 즉 사각뿔 형태의 봉분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리고 서안 일대의 무덤들은 이미 전한 시기의 왕릉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중 어떤 양식은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이라고도 한다.

이들 피라미드 중에 BC 3,000년 이전의 동이족의 유물들이 발굴되었기에 당시 중국의 신화통신이 밝힌 내용 중에 “중국문명은 동이족 고조선민족의 문명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한족은 황하 유역에서 농사를 짓고 몽골인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거란 오환 여진 이들은 완전 유목민으로 정착문명과 거리가 멀다고 여겼다.

초기 형식이 만주의 고구려 장군총(將軍塚)처럼 위로 갈수록 낮아지는 계단식이다. 고구려의 무덤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들여쌓기 공법이라 한다. 중국과 일본에 없는 고구려 건축 공법이다. 이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서안의 외곽지역 중에 Banpocun (반포) 라는 곳은 7000년전의 유물이 다량 발굴된 앙소문화, 고대 유적지이기도 하다.

독일 저자 HartwigHausdorf의 저서는 “Das chinesische Roswell (German) : Ufo Encounters in the Far East from Ancient Times to the Present”라고 소개했다. 등장하는 사진 중 상당수에는 Photo by Hartwig Hausdorf 라고 당당하게 찍혀있다. 그 사진들이 서안 근방에 있는 피라미드를 찍은 것들이다. 중국정부는 그를 추방하였다. 정확한 근거 있는 소문은 아니지만 그럴 듯한 이야기가 있다.

다음은 중국 서안지역 피라미드 발굴에 참여한 중국인 발굴 전문가 故 장문구(張汶邱 )씨가 죽기 전에 증언한 내용이라고 전한다.
“1963년 4월에 우리 고적 발굴팀 36명은 당국으로부터, 진시황의 다른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조사해야하니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출발전, 조사단장은 우리 발굴단원들에게 이번 유적은 매우 중요하여 조사, 발굴 내용을 외부에게 일체 누설하면 안 되는 점을 각별히 유념하기 바란다고 말하였다. 우리일행은 기차와 버스, 트럭을 나누어 타고 이틀 만에 목적지인 넓은 평원지대에 도착하였는데 창밖으로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많이 있었고, 도착한 우리 발굴단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탄성을 질렀어요. 우리 중국에도 이런 피라미드 있었구나! 하는 기쁨과 경이로움이 뒤섞여서 말이죠, 우리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또 다른 이 엄청난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조사단은 4팀으로 나뉘어져 이후 3일 동안 피라미드의 가장 큰 순서대로 먼저 가운데 3개 피라미드를 지정하여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3곳 다 거의 한 형태의 것이었는데 이중 양옆의 두 곳보다는 가운데 것이 대단했어요. 거대 한 벽돌 피라미드 지하입구로 들어가자 약 3~5층으로 석실이 나뉘어져 있었고, 상층부 공간으로 들어갈수록 말과 마차를 그림으로 화려하게 조성된 벽화, 그림, 여러 문자들, 조각류 약 6,200여점, 맷돌, 절구, 솥, 그릇, 등 생활도구 1,500여점, 동물의 뼈등 음식물 400여점, 청동검, 활, 금관, 칼, 창등 장신구류, 등 부장품 7,800여점, 상투머리(동아세아인들의 머리 습관)를 한 정 중앙시신 등 14구과 호위상 3,000 여점 등이 대량발견 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보는 이러한 너무나도 엄청난 유물, 유적에 대해 모두 하나같이 무엇에 홀린 듯 마치 외계인의 세계, 외계인의 무덤을 발굴하고 있는 듯한 느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유물들을 확인하면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을 했었는데, 작업 3일째 되던 날 대충 7할 정도 파악, 작성된 상황이었고 이날 오후쯤에 이를 당시 발굴 단장이던 모 교수에게 중간보고하자 그분은 큰 한숨을 내쉬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유적은 우리 황하족 유물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유적이다. 중화역사 이전의 조선문명이야! 라고 말하면서 큰일이다. 일단 당국에 보고 한 후에 다시 지시를 받아야 하니 지금까지 발굴을 모두 중단하고 유물들은 모두 그 자리에 두고 일단, 오늘은 그만 나가세!” 라고 말하여 모두 발굴을 중단한 채 나와 숙소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발굴중단과 동시에 철수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우리 발굴단원들은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그 유적이 우리의 유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고 일행은 그곳에서 떠나기에 앞서 숙소에서 현지공안에게 이곳에서의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작성 제출하였고, 그렇게 돌아온 이후, 그 피리미드들에 관해 더 이상 소식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그게 그 피라미드에 대한 저로써의 마지막이었고 제가 아는 모든 것입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떠도는 이야기다.

진나라가 그처럼 중국 서북방에 자리 잡고 있어서 중국 역사가들은 세계의 첫 재국, 진나라와 진시황제를 오랑캐 즉, 흉노로 취급하는 처지가 되어서 처음으로 당황하게 된듯하다. 중국 정부가 1960년대부터 발굴하고 동이족(고조선과 고구려)의 유물들이 출토됨으로 발굴을 중단하고 동북공정을 시작하여 중국의 역사에 포함시키는 정책을 먼저 시작하게 된 듯하다. 동아세아의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를 중국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동북공정이다. 동이족인 진시황제의 무덤은 지금도 발굴이 중단되어 있다.

동아세아 민족이 한반도에서 만주로, 만주에서 몽골로, 몽골에서 티베트로, 그리고 계속해서 서방으로 진출하며 아세아 대륙을 횡단하여 초원을 정복하고 동유럽과 서남아세아에 이르는 길이 후에 비단길이 되었다. 진시황제에 밀린 훈족은 진나라보다 200년 후에 세워진 로마를 침략하던 길은 동아세아인이 수만 년에 거쳐 서쪽으로 진출해 나간 비간길이다. 비간길 따라 진의 통치 범위는 현대 카자흐까지 미치는 대제국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 남부에는 농경에 필요한 저수지를 파고 난 대량의 흙으로 작은 산을 지어 올렸다. 때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 되기도 하고 커다란 분묘(Mound)가 되기도 했기에 지금도 한반도 남단에 많이 남아있으며 그 문화는 북미대륙에 미시시피 강 유역으로 연결됨을 이미 설명하였다. 피라미드는 흙으로 큰 산을 짓는 무덤에서 시작하였다. 일본의 오사까-나라일대에 산재한 떼 입힌 대형 고분들이야말로 한반도 남부의 백제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부여족의 무덤들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고분은 닌또꾸천황(仁德王)능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한 겹의 해자만이 고분을 둘러싸고 있지만 원래는 세 겹의 해자가 둘러쳐져 있었고 총길이는 무려 1천미터 가량이다. 이 규모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절반 규모에 달한다.

신석기시대 만주일대에 석탄불에서 나오는 금속 연장이 자연석을 깨트려 사각형 바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만주 지린성 일대와 서안시 외곽에 수 천 개의 층단식 피라미드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북한이 발굴했다는 단군릉도 모두 7층, 9층의 피라미드식 적석총 구조다. 또 집안시의 환도산성 아래 ‘산성하 무덤군’에 아직도 수천 기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 적석총이 널려 있다. 모두 홍산문화 적석총과 연결된다.

(중국 집안시 산성한 고분군의 피라미드식 적석총. 우실하 교수 제공)

동아세아 신석기시대 문화에 수 천 년의 금속문화와 농업발달에 따른 높은 인구밀도에 사회적 경쟁이 인류문화 문명의 요람지였음을 볼 수 있다. 흙으로 봉산을 짓고 고인돌의 거석문화를 거친 피라미드 진화유적이 한반도 주위에 수없이 많다. 아프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에 나타난 피라미드는 돌연변이 현상으로 그 성장과정을 찾아볼 수 없다. 일시적으로 나타난 고도의 섬세한 가구 공예문화도 그 뿌리가 아프리카나 중남미 대륙에 있지 않고 동아세아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아세아에 만주의 유목민 생활과 남부의 농경민 생활이 연합하여 가장 일찍부터 문화와 문명이 자라난 뿌리가 이곳에 있다.

멕시코시티 외곽에 아스텍 문화는 해와 달 피라미드(Teotihuacan Pyramids)를 세웠고 그 크기는 이집트 피라미드 크기와 유사하다. 달 피라미드 앞에 축제 행로가 2마일 길이로 뻗어 있고 그중에 한 피라미드에는 살아 꿈틀거리는 동아세아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동아세아의 피라미드 문화가 태평양 건너편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면 육로와 해로로 통하는 지중해에 전해짐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수 천 년이나 수 만 년을 거쳐 피라미드가 잉태되고 진통을 거쳐 탄생하는 과정이 한반도 주위에서는 볼 수 있지만 아프리카나 서남아세아에서는 볼 수 없고 북남미 대륙에서도 볼 수 없다.

멕시코 휴양도시 칸쿵시티 교외에 꿈틀거리는 룡의 위용을 조각한 피라미드(Chichen Itza & the Pyramid of Kukulcan)는 동아세아 청룡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미문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마야문명에 용머리 조각은 흔하게 볼 수 있고 코끼리 얼굴이나 동아세아 청동유물에서 보이는 조각들을 피라미드의 장식으로 만들었음은 동아세아 문화의 연결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동아세아에서 수만 년의 석기시대를 거쳐 진화된 고분문화와 입석문화는 수천 년을 거쳐 세계 여러 곳에 전해졌다. 만주 지린시와 서북내륙에 서안 근교를 비롯한 주위지역에 수천 개의 적석총 유적들은 고구려 고분군을 포함하여 동아세아 문화의 세계적 유산이다.

문화와 문명은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전해진다. 세계적 원거리에 전해지는 수단은 4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씨족이나 민족의 대이동으로 긴 시간을 거쳐 이루어진다. 둘째는 상업 연결로 육로나 해로를 통하여 동남아세아의 향료와 비단이 서남아세아와 유럽에 전해지듯이 혹은 동아세아의 도교 유교 불교가 서남아세아에 기독교나 회교도로 전해지듯이 분포되는 현상이다. 셋째는 급격한 정치적인 변화에 따른 분포현상이다. 침략자가 침략지역에 문화와 문명을 전달하거나 혹은 현지의 문화를 흡수하는 현상이며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처럼 비교적 인접 지역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난다. 넷째는 정치적 고위층 무리가 필사의 도망자들이 되어 동반하는 무리와 그들의 지식과 생활문화를 도피지역에 전하는 방법이다. 새로운 집권자가 기존 집권자와 주위에 충성했던 귀족들을 모두 말살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 필사의 도망자들이 형성되고 거대하고 치밀한 준비가 시작되고 추적을 불허하는 먼 거리까지 이르게 된다.

중미 아메리카에 전해진 피라미드는 셋째의 경우이며 나일강에 전해진 피라미드는 넷째 경우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양자강중류 중원에서 거주하던 중국 한족이 강 하구와 황하 하류에서 거주해온 한반도계 해양민족(동이족)국가들 상, 은, 촉, 요, 진, 등의 여러 나라들을 점령하고 주나라를 세우듯 침략 국가들을 세웠다. 이때 이미 열려있는 육로와 해로를 따라 동이족 여러 나라 왕들과 귀족들이 중앙 아세아인의 희생제물이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동아세아 역사에 가장 큰 탈출이 이루어진다. 사마천의 기록에 의하면 문화의 절정에 이른 동이족 상나라가 중앙 아세아의 중화족 주나라에 침략 당하였을 때 약 25만 명의 인구가 탈출을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에 이르는 육로나 항로의 지식이 있었고 육로로 북아메리카대륙에 그리고 적도선 해로를 따라 남아메리카에 이르는 필사의 도망을 할 수 있었을 듯하다.

3000년 전에 세워진 피라미드의 그 거대한 구조는 종교적 배경에서 고도의 과학과 막대한 노동력의 조직적 운영으로만 가능한 건축물이기에 더욱 경이롭다. 한편 그 무렵에 남미대륙 태평양연안에 패루에도 층단식 피라미드들이 많이 세워 졌고 조금 후에 중미에 해와 달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한반도와 황해연안에 신석기시대부터 인구밀도가 높고 훌륭한 종교문화와 금속문명을 갖추어 그들이 나침반을 이용한 원양항해를 통하여 남미대륙과 아프리카에 연결되는 가능성을 보면 세계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다.

2. 세계 혈연학 지도에서 보이는 동아세아인의 세계적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