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

직선과 곡선 최용완 06.01.12 곧은 선(線)은 몸으로 휜 선(線)은 마음으로 눈과 눈이 마주치는 빛은 직선 해와 달 사이를 가르는 빛은 시간이 휘어놓은 무지개 곡선 격류를 거슬러 오르는 숭어의 도약 직선과 곡선을 엮어 만든 마음과 하늘이 이어지는 멈추지 않는...

펭귄 한 마리

펭귄 한 마리 물과 불이 겨루는 반대편엔 얼음 바다 제 것인 양 수평선에 떠가는 하얀 눈덩이 거대한 몸집은 아랫물에 누이고 얼굴만 내밀어 하늘을 숨 쉰다 한때 지구가 잠든 사이 식은 몸 덮어 주었던 흰 이불 깨어날 때 산산이 조각나서 껍질만 흩어져 훌러가는 수만 년의 세월을 물에 띄우고 한 꿈으로 떠가는 장엄한 얼음 조각 햇볕이 끌어안을 적마다 살짝 기우는 듯 고드름 눈썹 내리고 얼음 동굴은 바다 깊게 푸르러 적막이 깔린 차가운 숨결 한숨 쉬어가는 펭귄 한 마리 햇살 나누는...

망나니 도끼

망나니 도끼 최용완 05.10.06 죄와 벌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시냇물 산바람 묶여 가는 길에 북 치며 징소리 크게 울려 탈을 쓰고 춤을 추며 죄인을 웃긴다 웃음 뒤에 울음이 길게 뒤를 따라 구경꾼들 모여들어 넋을 내려놓고 한순간 숨죽여 지켜보는 눈망울들 주문 읊는 목이 쉰 마지막 한마디에 침묵하는 하늘 향해 도끼 높이 들어 얼굴들은 저 허공으로 잠시 고개 돌린다 번뜩이는 도끼날에 토막 나는 죄와 벌 하늘과 땅이 끊겨서 흙 위에 뒹굴었다 남기고 간 소리 떨리는 메아리는 죄...

추억이 머무는 자리

추억이 머무는 자리 최용완 03.27.08 공원 길 지나다 쉬어 간 사연 길게 다가와서 의자에 몸 풀어 내려놓고 태없이 묶어서 떠나간 자국 징징대는 아기를 엄마가 달래고 처음 만난 사람에 구걸하다 빈손으로 떠난다 맺힌 이야기들 한을 풀어서 멀리 흘리고 말싸움에 일그러진 두 얼굴 마음을 접어 거친 숨결 뜨거운 몸부림 혼을 태우고 그 이름 부르다 부르다 목이 멘 사연 찬바람 소나기 내려 씻기고 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녀간 자리 머문 자리 색 바래어 소리 없는 옛 추억 돌아와...

파도

파도 최용완 07.13.06 소리치며 몰려 왔다가 수집은 듯 물러나며 산에 부딪쳐 바윗돌 헐어내고 바위 부서진 모래가루 파도 자락에 휘날린다 밀물 치솟는 열기에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간 썰물 붉은 모래 자국에 해는 기울어 밤하늘에 별들 그 많은 사연 파도는 밤을 새워 들려주니 구름에 가린 달 묵묵히 눈을 감고 광막한 우주 안에 살아 쉬는 지구 숨소리 바다 노래는 꿈결에...

머리 없는 돌부처

머리 없는 돌부처 최용완 04.20.12 기다렸다는 듯 들려준다 깜찍스러운 놀라움 거침없이 용서하라 목이 잘린 세상일 어찌 모두 알 수 있을까 남의 분노를 나의 분노로 옮기지 말라 그도 나도 모르는 어떤 연유 때문 어두운 밤 내 발에 밟혀 집도 목숨도 깨어진 달팽이의 원한을 어찌 풀어줄 수 있으랴 이 순간에 거침없이 용서함은 내 삶에 불행이 다행으로 다시 밝아오는 새날 섭섭함도 까맣게 떠나보내고 다음 순간으로 고개 돌려 걸어가라고 돌 부쳐 손이 내 등을...